법원 “임대차법 시행전 샀으면 세입자 요구 거절 가능” 첫 판결

신희철 기자

입력 2021-05-19 16:50 수정 2021-05-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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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 밀집 상가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난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지난해 7월 31일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면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토교통부가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법원 판결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문경훈 판사는 지난달 8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아파트 소유자인 A 씨가 세입자 B 씨 가족을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소송에서 집주인인 A 씨에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세입자 가족은 임대차 계약 만료일에 보증금을 돌려받고 아파트를 A 씨에게 인도하라”고 명령했다.

A 씨는 지난해 7월 5일 해당 아파트를 샀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한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약 3주 전이었다. A 씨가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것은 같은 해 10월 30일이었다. A 씨는 기존 집주인과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인 올해 4월 14일 이후 실제 거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B 씨는 A 씨가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치기 이전인 지난해 10월 5일부터 기존 집주인에게 임차 기간 연장을 요구한 만큼 퇴거할 수 없다고 맞섰다. 7월 말 시행된 임대차법이 보장한 계약갱신요구권을 정당하게 행사했다는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A 씨가 매매계약 체결 당시 계약갱신요구권이 도입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개정 임대차법 시행 전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 매매계약을 맺었다”면서 “원고들로서는 기존 임차 기간이 끝나면 당연히 자신들이 실제 거주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치지 않았다고 해서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면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며 “피고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이전에 원고가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면 임대인 지위를 승계해 적법하게 갱신 요구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기존 집주인이 B 씨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한 것도 타당하다고 봤다. 기존 집주인이 “매매계약을 체결해 임차 연장이 안 된다”고 한 것은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해 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전에 매매계약을 맺고 계약금까지 지급한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갱신을 거절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국토부가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지만, 판결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B 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B 씨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당장 집을 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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