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맛있는 한국 쌀이 왔다” 난민들에 단비

동아일보

입력 2021-05-18 03:00 수정 2021-05-1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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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매년 5만t 원조
예멘-우간다 등 300만명 수혜
품질 좋아 94%가 최고만족도


임형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

“한국을 재건하는 데는 100년 이상 걸릴 것이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한국을 떠나며 남긴 미국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최빈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1963년에 큰 홍수로 식량 사정이 심각해지자 당시 외무부, 농림부 장관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유엔식량계획(WFP) 본부에 다급하게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이는 WFP가 20년 동안 현존 유엔 기관 중 한국에 가장 큰 규모의 원조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WFP의 원조는 1984년 끝났으니 불과 한 세대 남짓 전만 해도 우리는 WFP의 원조를 받던 나라였다.

현재 전 세계의 기아 상황은 심상치 않다.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든다. 세계 기아 인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작년 한 해 1억3500만 명에서 2억70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헝거(굶주림) 팬데믹’이 된 것이다. 5일 발간된 세계식량위기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55개국 1억5500만 명이 인도적 식량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12개국은 매일 인구 1만 명당 2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한국의 쌀 지원은 가뭄의 단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부터 WFP를 통해 매년 쌀 5만 t을 굶주림에 시달리는 전 세계 300만 명에게 보내고 있다. 이렇게 보낸 쌀은 기아 상황이 가장 심각한 예멘,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난민들에게 전달된다. 올해부터 시리아, 라오스에도 보낸다. 한국 쌀은 이물질이 없고 품질이 좋아 설문대상 수혜자의 94%가 최고의 만족감을 보였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한 소말리아 난민 여성은 “우리는 쌀을 먹는 민족이다. 그동안 맛없는 수수만 먹다 한국 쌀을 받으니 명절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 쌀을 받던 날 난민촌 주민들은 ‘코리아’를 연호하며 기뻐했다. 우리의 도움이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며칠 전 전 세계의 기아 인구에 전달할 쌀을 선적하는 현장인 군산항과 부산항을 다녀왔다. ‘Gift of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의 선물)이라는 문구와 태극기가 선명히 찍힌 쌀 포대가 배에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보며 무척 자랑스러웠다. 튼튼한 식량 포대는 현장에서 식량을 나눠준 뒤에도 오랜 기간 수혜자 가정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재활용된다. 한국 쌀을 받는 주민들은 이 포대들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국민들에게 감사함을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우리가 한 세대 만에 식량 원조를 졸업하고 ‘제로 헝거’(굶주림 없음)를 성취했듯이 세계 인류가 기아의 고통을 뒤로 하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달성되기를 바라본다.

임형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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