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해방’에도 마스크 쓴 뉴요커들 “누가 백신 맞았는지 몰라”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05-17 03:00 수정 2021-05-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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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美 ‘실내 노마스크’ 허용 첫 주말 르포
야외선 맨 얼굴로 휴일 즐겨
대형 상점선 직원-손님 100% 마스크
바이든 “마스크 쓴 사람에게도 친절”

작년 봄 수만명 목숨 잃은 악몽 탓
주정부도 새 가이드라인에 유보적
전문가 “성급한 권고” 지적 이어져


실내서도… “아직은 일러”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소호 지역의 한 상점에서 마스크를 쓴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전날 미 보건당국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대부분은 마스크를 썼다. 뉴욕=AP 뉴시스
토요일인 15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시 퀸스 헌터스포인트의 한 공원. 강 건너 맨해튼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엔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로 붐볐다. 이틀 전 미국 보건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한 영향 때문인지 풀밭 등 야외의 시민들은 대부분 맨 얼굴을 드러낸 채 휴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 인근의 대형 약국체인 CVS 점포에 가 보니 직원과 손님들은 100%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곳의 흑인 여성 직원은 “백신을 맞았는데 여기서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뉴스를 봤다. 하지만 여기선 계속 써야 한다. 그게 우리의 규정”이라고 했다. 가까운 한 대형 마트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만난 한 백인 여성은 “이럴 때일수록 경계심을 풀지 말아야 한다. 아직은 바이러스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강변의 여객선 선착장도 다르지 않았다. 페리 매표소나 푸드트럭 앞처럼 긴 줄이 생겨 사회적 거리 두기가 힘든 곳에서는 야외라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3일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게 야외는 물론이고 대중교통이나 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내에서도 ‘노 마스크’를 허용하는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 날 코스트코, 월마트, 트레이더조스 같은 대형 마트들은 ‘백신 접종을 마쳤다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고객들에게 공지했다.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야외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도 이날 마스크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이런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지난 주말 뉴욕 시민들은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쇼핑몰과 마트 등 실내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맨해튼의 길거리나 공원 등 야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자 비율이 절반을 넘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미국 언론은 분석한다. 그중 하나는 습관화다. 작년 봄 코로나19가 뉴욕을 덮쳤을 때 이 지역에서만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런 기억 때문에 마스크를 꼭 챙겨 쓰는 습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외서도… “아직 불안해” 1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헌터스포인트 지역의 한 선착장에서 시민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쓴 채 여객선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뉴욕 시민들은 야외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주정부도 연방정부의 새 가이드라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뉴욕을 비롯해 매사추세츠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은 주 차원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 트위터에 “백신을 맞았다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기억하라.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일부는 백신을 맞더라도 마스크를 쓰길 원할 수 있다. 마스크 쓴 사람을 봐도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썼다.

누가 백신을 맞았는지 구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마스크를 쉽게 벗을 수 없는 이유다. CDC의 새 가이드라인 발표 후 월마트는 백신을 맞은 고객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하면서도 “고객들에게 접종 증명서를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백신을 맞지 않고도 마스크를 벗는 고객이 있을 수 있지만, 그냥 사람들의 선의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접종 여부를 추적할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라며 “마스크를 벗은 이웃들이 백신을 실제로 맞았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CVS, 월그린스, 타깃, 애플스토어 등 상당수 기업은 매장 내 고객들에게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고 있다. 맨해튼의 유명 서점인 ‘192북스’는 인스타그램에 “CDC 가이드라인을 봤지만 고객과 직원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고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계속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과 보건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가 너무 앞서간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회원 약 17만 명의 전미간호사노조(NNU)는 15일 성명을 내고 “CDC의 새 권고안은 공중보건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환자와 간호사, 근로자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1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팬데믹 사태의 와중에 이런 권고안을 낸 것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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