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왔습니다” 외치는 로봇의 세계, Digit [모빌리티 인사이트]

동아닷컴

입력 2021-05-13 13:11 수정 2021-05-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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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는 로봇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로봇을 SF 영화나 상상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흔히 가는 식당이나 수많은 사람이 갈 길을 재촉하는 길거리 등에서 로봇을 보는 일은 없었죠. 우리 주변에서 가장 친숙한 로봇은, 거실 바닥 위 먼지를 어딘가 한곳에 고스란히 모아놓던 로봇청소기 정도가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주변에 로봇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죠.

요즘 식당에 가면 서빙 로봇을 간간이 볼 수 있습니다. 주방에서 완성한 요리를 손님이 앉아있는 테이블까지 안전하게 가져다 주죠. 이 서빙 로봇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얼굴을 마주봐야 했던 식당에서 손님을 안심시켰기 때문입니다. 또한, 식당 입장에서 서빙 로봇은 유용했습니다. 힘들어하지도 않고, 명령에 일관되게 따르며, 시키는 일은 바로바로 처리했기 때문이죠. 상당히 매력적인 아이였습니다. 예상컨대, 앞으로 서빙 로봇은 포스트 코로나 속을 누비지 않을까요.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서빙 로봇 ‘딜리플레이트’, 출처: 우아한형제들

서빙 이외에도 로봇은 공항에서 사람 대신 고객에게 안내하거나, 커피를 만들기도 합니다. 커피를 만드는 로봇은 이미 많은 분들에게도 익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로봇과 모빌리티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아직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모빌리티 업계에서 로봇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배달 로봇 이야기죠.


로봇도 모빌리티와 연결되는군요. 그 중의 하나가 배달 로봇(?)이고요. 한국에서도 몇몇 배달 로봇을 시범 운행한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배달 로봇은 물건을 이동시키는 - 그러니까 배달해 - 사람에게 가치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모빌리티 산업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물류의 과정을 설명부터 해야겠네요. 물건을 배송하는 물류는, 여러 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최근 주목하는 단계는 바로 ‘퍼스트 마일(First Mile)’과 ‘라스트 마일(Last Mile)’입니다. 일반적으로 퍼스트 마일은 제조사가 제품을 물류 센터로 넘기는 단계를 말하고, 라스트 마일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마지막 접점을 뜻하죠.

아마존의 배달 로봇 스카우트 모습 출처: 아마존 스카우트 유튜브 채널


물류의 처음과 끝, 그게 퍼스트 마일과 라스트 마일이라는 말이네요.

우리가 말하는 배달 로봇은 주로 마지막 단계, 라스트 마일 단계에서 활동하죠. 이미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에서 많은 업체가 개발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배달 로봇은 ‘아마존 스카우트(Amazon Scout)’입니다. 바퀴 6개 달린 이 로봇은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센서를 탑재해 보행자 전용도로를 이동하죠.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반려동물이나 사람 등 움직이는 장애물도 알아서 피해 다닙니다. 아마존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명한 물류 전문기업 페덱스(FedEx)도 배달 로봇을 개발 중이죠.

페덱스 배달 로봇 사진, 출처: 페덱스


지금 소개하는 배달 로봇은 어떤 점이 특이한가요?

‘디지트(Digit)’라는 배달 로봇입니다. 이 로봇은 앞서 설명드린 배달 로봇과 달리 바퀴가 없어요. 두 발로 서서 걷습니다. 이족보행 로봇이죠.

바퀴 달린 배달 로봇의 가장 큰 단점은 계단입니다. 올라가기가 쉽지 않죠. 자율주행 자동차나 바퀴 달린 이동 로봇은, 평지나 완만한 오르막길/내리막길은 잘 달립니다. 하지만, 도로의 둔턱이나 현관 문 앞 계단을 만나면 당황해하죠. 바퀴 지름 길이 이상의 둔턱은 쉽게 오르내릴 수 없습니다. 단 한 칸짜리 계단이라도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인 셈이죠.

디지트를 개발한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이족보행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사람이 걷는 모습을 착안했죠. 왜 이족보행으로 배달 로봇을 개발했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로봇도 사람처럼 걸을 수 있어야, 사람이 다니는 길을 통해 배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동일하게 움직여야 한다’라는 아이디어가 디지트 개발 이유입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개발한 이족보행 배달 로봇 ‘디지트’,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디지트는 두 다리 위에 가슴과 양 팔을 지닌 로봇입니다. 들 수 있는 최대 무게는 약 18kg이죠. 가슴 부분에 컴퓨터를, 머리 부분에 센서를 탑재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하죠.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균형을 잃거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이용해 물건을 운반하고, 수령인에게 두 팔로 건네줍니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도 할 수 있다네요.

두 팔로 물건을 들고 두 다리로 걸어서 배달하는 디지트 사진,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이 배달 로봇을 만든 곳은 어떤 업체인가요?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지난 2015년 설립했습니다. 미국 오레곤 주립대 로봇 과학자들이 모여서 창업한 스타트업이죠. 대학에서 연구하던 이족보행 로봇 ‘애트리아스(Atrias)’를 개선해, 지난 20017년 타조에서 영감받은 ‘캐시’라는 이족보행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캐시는 외부 충격에도 균형 감각을 훌륭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죠.

‘캐시’ 사진, 출처: 어질리티 로보틱스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캐시 엉덩이 관절 부분에 사람처럼 3자유도를 구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진과 후진, 회전 등 다양한 동작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었죠. 앞서 소개한 디지트는 캐시에 가슴과 양 팔을 붙여 더 다이나믹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개선한 버전입니다.

이 같은 배달 로봇 개발과 영상 공개, 제품 소개 등에 힘입어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지난해 10월, DCVC와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투자 유치한 누적 자금은 약 2,900만 달러(한화 약 326억 원)에 달하죠.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이번 투자 금액을 통해 앞으로 물류 업체나 e-커머스 소매점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한다고 밝혔어요. 반복 작업이나 육체적인 부담이 큰 작업, 위험한 작업 등을 수행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지속 개발하겠다는 뜻이죠.


바퀴로 달리는게 아니라… 두 다리로 걷는 로봇이라니. 앞으로 디지트를 실제 운용한다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물건을 들고 먼 거리를 걸어서 운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죠. 아마 차량과 함께 운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현재 택배 기사가 차량 또는 오토바이로 물건을 옮기고, 다시 걸어서 집 앞까지 배송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Ford)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포드는 디지트의 첫 번째 고객이기도 했죠. 양사는 자율주행차량과 로봇 배송 협력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지트가 포드 자율주행 차량을 타고 물건을 배달할 목적지 인근에 도착하면, 접혀 있던 팔과 다리를 자동으로 폅니다. 이어서 차에서 내린 다음 택배를 가지고 고객 집 초인종까지 누르는 자동화 기술을 선보였죠.

지난 CES2020에서 포드가 공개한 디지트의 모습, 출처: CES2020

디지트는 현재 25만 달러(한화 약 2억 8,500만 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직 비싸지만, 많은 기업이 서비스를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니 앞으로 생산량만 늘어나면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내 배달 로봇 개발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국내에도 여러 업체가 배달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배달 로봇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유의미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가는 곳도 있죠. 국내에서 개발하는 다양한 배달 로봇들은 대부분 바퀴를 달고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와 계단과 같은 장애물을 넘을 수 없죠. 계단 앞에서 멈춰야 하는, 바퀴 달린 배달 로봇은 실제 운용하기 위해 해결할 것이 많습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이족보행과 사족보행 로봇을 개발하는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를 인수하기도 했죠.

앞으로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로봇 뿐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들까지 연구할 텐데요. 이렇게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이 유리할 겁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카이스트의 휴보(HUBO)를 시작으로 워킹 로봇을 연구하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 상용화로 이어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해외의 기술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미래 로봇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족보행이나 사족보행,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분야의 연구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선임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 가능성을 파악한 뒤,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 컨퍼런스 개최를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웹서비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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