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목숨 위협하는 중고차 시장… 정부 침묵 일관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21-05-12 14:42 수정 2021-05-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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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중고차 시장 구조로 인해 사기는 물론이고 사망 사고 등 소비자들이 갈수록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이미 투명성을 강조하며 중고차 사업 진출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이를 관할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1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1일 허위 매물을 미끼로 중고차를 강매한 중고차 딜러(24) 등 4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온라인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중고차 허위 매물을 올려놓고 이를 보고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구매자를 속인 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차를 강매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에 올린 매물을 보고 찾아온 구매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차량에 급발진 등 하자가 있다며 계약 철회를 유도하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차량 문제를 보여준 후 사람들이 계약 철회를 요구하면 약관을 이유로 출고비용 환불은 물론 대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며 다른 차를 구입하라고 압박하고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를 강요했다.

실제로 중고차 사기로 큰 충격을 받은 60대 A 씨는 지난 2월 차를 구매한지 20여 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 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중고차 매매 집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문신을 보여주며 위압감을 조성하고 돈이 없다고 하자 8시간 동안 차량에 감금하고 강제로 대출까지 받게 했다”며 “구매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범죄 의심이 든다면 112에 신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위 매물뿐만 아니라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는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 피해는 금융사에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발령했다.

중고차 매매시장의 불투명성과 자동차 담보대출의 취약성을 악용한 중고차 대출 금융사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그 유형과 유의사항을 안내한 것이다. 주요 유형으로는 렌트카 사업 수익금 또는 중고차 수출 이익금을 제공하겠다며 명의 대여와 차량 인도를 요구하거나 저리의 대환대출이나 취업 또는 현금융통이 가능하다며 중고차 대출계약을 요구하는 등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고차 대출 명의를 대여해달라는 제안은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며 “금융사와 중고차 대출 계약을 진행할 경우 본인 명의로 체결된 모든 대출계약의 원리금 상환의무는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고차 대출을 받으면 저리의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는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며 “현금융통을 제안하고 금융사와의 대출계약과 별도의 이면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거나 금융사에 거짓 답변을 유도하는 경우에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차 관련 사기가 만연하고 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소비자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등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교통연대’는 지난달 12일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를 소비자 관점에서 풀어가고 기존 후진적인 중고차 시장의 거래 관행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 운동’을 개시한 바 있다.

이 온라인 서명 운동은 시작한지 28일 만인 지난 9일 참여자 수가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참여자들은 서명 운동 참여와 함께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만과 실제 피해 사례를 함께 남기고 있다.

시민연합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해도 마땅한 구제 방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일한 구제 방법은 민사소송이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한 달도 안 돼 10만 명이 넘는 소비자가 참여한 것은 중고차 시장의 변화를 바라는 불만의 표출”이라며 “중고차 시장의 혼란과 소비자 피해 방지 차원에서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중고차 시장의 개방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결론이 조속히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여전히 중고차 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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