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따뜻한 병원이야기]“돈 없어 치료 포기” 이주노동자 자녀에 도움의 손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2021-05-12 03:00 수정 2021-05-1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아주대의료원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

아주대병원 의료진이 퇴원하는 생후 5개월 베트남 여아와 함께 퇴원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아이는 아주대병원이 외국인 근로자와 가족 돕기를 위해 만든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의 첫 의료비 수혜자였다. 왼쪽부터 아주대병원 이상진 사회사업 팀장, 아기 엄마와 아기, 홍유선 흉부외과 교수(주치의), 임상현 흉부외과 교수(진료부원장). 아주대병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따뜻한 병원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병원은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의 사투가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앞으로 의료인, 환자와 관련된 현장의 따뜻한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최근 아주대의료원(경기 수원시) 교직원들은 이주노동자와 가족을 위한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태어난 어린 자녀들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임상현 진료부원장과 이상진 사회사업팀장을 만나 자세히 들어봤다.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가 무엇인가.

“아주대의료원 주변 안산시, 화성시 등에는 이주노동자가 많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이주노동자도 많은데, 여성의 경우 출산 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일하곤 한다. 하지만 의료비 부담으로 병원 방문을 망설인다. 특히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으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 방문을 꿈도 꾸지 못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산모와 신생아가 건강 사각지대에 노출된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최근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아주대의료원 교직원의 자발적 참여로 모으는 ‘아주사회사업기금’에서 지원된다.”(임 부원장)


―프로젝트를 만든 계기가 있었는지.

“지난해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때, 지역의 한 산부인과 의원에서 태어난 몽골 아기가 호흡 곤란으로 아주대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했다. 아이 부모는 건강보험도 없고, 일정한 소득도 없는 상태였다. 아이는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 기흉, 폐동맥고혈압 등으로 집중치료실 치료를 계속 받았다. 늘어나는 진료비 걱정에 몽골 아버지가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못 해 여기서 죽나, 치료시설이 없는 몽골 가서 죽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몽골로 가게 해 달라’고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국내에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많지만, 이처럼 아픈 아이를 둔 외국인의 고통도 너무 크다. 우리가 조금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이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만들었다.”(임 부원장)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의 첫 혜택은 누가 받았나.

“지난해 11월 아주대병원에서 베트남 출신 부부의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난 5개월 여아가 최근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퇴원했다. 심장의 좌우 심실 사이의 중간 벽에 결손(구멍)이 있는 선천성 심실중격결손 환자다. 아이가 아파서 체류비자는 연장됐지만, 건강보험에 가입된 상태가 아니다 보니 막대한 수술비 탓에 치료를 포기했었다. 이런 딱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아주 특별한 손 내밀기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수술을 하게 됐다.”(임 부원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불법체류 외국인을 왜 도와야 하는지 문제 삼는 분들도 있었다. 아직까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견이 많다. 하지만 생명은 모두에게 다 소중하다. 아주대병원은 환자가 누구이든 생명 존중을 실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환자가 누구이든 관계없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못 받는다고 하면 기꺼이 후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예정이다.”(이 팀장)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국내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의 자녀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를 초청해 수술해주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전에도 해외 봉사 및 해외 환자 초청을 통해 의술을 전한 바 있다. 또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의 의료진을 초청하여 선진의료기술과 지식을 익힐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 가령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지만 2009년 처음 베트남 의사 4명을 초청해 무료로 연수교육을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10기 연수생까지 총 90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임 부원장)


―직원들의 자발적 기금인 ‘아주사회사업기금’은 무엇인지.


“아주사회사업기금은 1997년 아주대병원에서 인턴을 처음 시작하던 젊은 의사 54명이 매월 급여에서 1만 원씩 모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돕자고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강석윤 신윤미 임용철 인턴이 현재 교원이 돼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뜻에 깊이 공감한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 등 여러 교직원이 2000년부터 함께 하자고 뜻을 모으면서, 아주사회사업기금이 결성됐다. 20여 년간 교직원 770여 명이 자발적으로 매달 급여 이체를 통해 적게는 5000원부터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기부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된 기금이 약 16억 원이다. 지난해 연간 후원금은 약 1억 원이다. 아주사회사업기금을 통해 지원받은 환자는 지금까지 약 780명이다. 앞으로도 치료를 꼭 받아야 하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환자들을 대상으로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 (이 팀장)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