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규제 일원화-개인 자율성 강화”… 세계최고 법률 만든 英 ‘로벤스 보고서’

민동용 기자

입력 2021-05-11 03:00 수정 2021-05-11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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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겉도는 산업안전정책]“의견수렴-조사없는 국내와 대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산업안전 관련 법률은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1974년 제정)이다. 이 법의 토대가 ‘로벤스 보고서’다.

1970년 앨프리드 로벤스 경(卿)을 의장으로 전문가 6명이 참여한 정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2년간 조사 연구한 끝에 내놓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대형 산업재해(산재) 사고와 업무 관련 질병이 뚜렷이 늘고 있었다.

로벤스 보고서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이 너무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규제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워 노사 모두 산업안전에 무관심해졌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로벤스 보고서는 몇 가지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산업안전보건 규제를 일원화했다. 당시 영국에는 산업안전보건 관련 9개 법(부수적 규칙 500여 개)과 7개 종류의 감독관이 있었는데, 이를 포괄적인 기본법 하나와 행정기관 한 곳으로 정리했다.

법률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산업안전의 당사자인 사업주와 근로자 등의 자발적인 노력을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개인의 책임과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로벤스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 가운데 법규 위반이 원인인 사례는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작업 습관, 현장 정리 정돈 상태, 개인의 실수나 착오 등에 기인한다고 봤다.

또 감독관에게 사업장을 감독할 때 위반 사항을 적발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사업장의 전반적인 상황에 관심을 가져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산업안전 정책의 핵심은 일상적인 위반 사항을 자세하게 규정하는 데 있지 않고, 업체 스스로 자율적인 안전보건 시스템과 인프라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결론 내렸다.

2013년 저서 ‘산업안전보건법 국제비교’(한국학술정보)에서 로벤스 보고서를 소개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광범위한 전문가 의견 수렴이나 충분한 조사 없이 국회 통과 날짜를 정해 놓고 ‘중대재해 처벌에 대한 법’을 처리한 우리나라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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