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비 올라도 원청업체에 말 못할때, 중기중앙회가 대신 협상”

박성진 기자

입력 2021-05-10 03:00 수정 2021-05-1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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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대금조정협의제’ 시행



인천의 한 전선 피복제조업체는 올해 1분기(1∼3월)에만 6000만 원의 적자를 냈다. 전선에 들어가는 구리 등 원자재 값이 20% 넘게 올랐는데 납품단가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거래처에 원자재 가격 상승분 일부를 납품단가에 반영해 달라고 했지만 거래처는 ‘근거를 대라’고 맞섰다. 납품단가 산정 내역과 손익계산서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 것. 피복업체 대표 A 씨는 “거래처가 요구한 자료를 준비하기엔 시간도 없고, 까다롭게 굴면 거래마저 끊길까봐 그 뒤로 제대로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납품단가를 둘러싼 중소기업의 고민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지난달부터 열렸다. 중기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신해 납품대금 조정 협의에 나서는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가 지난달 21일부터 본격 시행된 것이다.

○ 중소기업 대신 납품대금 조정협의
9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제조업체의 59.7%가 공급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과 함께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용부담이 중소제조업체에 주로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시행되는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는 공급원가 상승으로 납품대금 인상이 불가피할 경우 중기중앙회가 수탁기업(중소기업)을 대신해 위탁기업(대기업)과 납품대금 조정협의에 나서주는 제도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시행 요건을 갖췄다. 이전까지는 개별 협동조합이 중소기업을 대신해 협의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영세해 협상력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기중앙회는 이번에 조정대행을 하면서 법률 자문과 원가 분석도 지원하기로 했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공급원가 상승에 따른 납품대금 인상 요청은 상생협력법에서 명시한 중소기업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 “납품대금 원가에 연동하는 방안 검토해야”
중기중앙회에 납품대금 조정을 요청하기 위한 요건은 다소 엄격한 편이다. 먼저 중기업 이상 규모의 기업과 수·위탁계약을 체결해 납품을 진행 중이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 △특정 재료비가 계약금액의 10% 이상이면서 원재료 가격이 10% 이상 상승 △물가 상승으로 인한 재료비 증가액이 잔여 납품대금의 3% 이상 △임금 인상에 따른 노무비 증가액이 잔여 납품대금의 3% 이상 △물가 변동으로 인한 경비 증가액이 잔여 납품대금의 3% 이상 △노무비가 계약금액의 10% 이상이면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3년 평균 이상 등의 요건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중기중앙회가 협의를 대행하면 이전보다 협상력은 강화되지만 해결해야 과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납품대금조정협의를 중기중앙회에 신청하기에는 각종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위탁기업이 조정협의를 거부하더라도 벌금 한도가 5000만 원이어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납품단가조정위 공동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제도 활성화를 위해 신청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며 “거래 단절 등을 우려해 개별 중소기업이 여전히 조정신청을 활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납품대금에 대한 원가 연동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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