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이 티셔츠로?…‘회장님’도 함께하는 ESG 패션

홍석호 기자

입력 2021-05-08 14:00 수정 2021-05-13 17:34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아라보자(araboja) ESG 〈1〉

소개팅을 앞두고 가장 먼저 신경 써서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색한 분위기를 한번에 날릴 수 있는 기가 막힌 농담?

얼마나 착실하게 학자금 대출을 갚고 저축해왔는지 보여 줄 통장 사본?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한 비전?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 신경 써야 할 것은 만나는 장소와 시간에 적절하고 깔끔한 옷차림이 아닐까. 산에서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면, 취미가 등산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카페나 음식점에 등산복을 입고 나가는 것은 조금 난감할 수 있는 것처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소개팅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기업이 투자자와 만나는 첫 인상이란 점에서 ESG가 잘 차려입은 패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를 앞세워야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사실 ESG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미 우리 같은 소비자 가까이에도 와 있다. 한때 골든구스 운동화 유행에 불을 붙였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새 아이템은 페트병으로 만든 티셔츠 아니던가. ‘회장님’도 함께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ESG 패션에 대해 아라보자(araboja).

지금 패션업계에 부는 ESG 패션은, 이제는 추억으로 사라진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처럼 단순히 재활용(리사이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더 부과해 한 단계 ‘업(Up)’ 시키는 ‘업사이클’이란 점이 특징이다.

우선 머리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바다에 버려진 그물을 수거해 재활용해 챙을 만든 모자 ‘부레오 햇’을 선보였다. ‘환경을 위해 우리 제품을 사지 말아 달라’는 광고를 할 정도로 친환경 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파타고니아가 이번엔 소셜 스타트업 부레오와 손을 잡았다.

부레오는 바다를 덮은 쓰레기의 약 10%를 차지한다는 버려진 그물망을 수거해 스케이트보드 등을 만들어온 기업인데 이번엔 파타고니아 브랜드 이름을 따온 지역이 위치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사용한 폐그물을 수거했다. 부레오 햇은 부레오의 홈페이지 등에서 35달러(약 3만9000원)에 판매 중이다. 파타고니아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4만~5만 원대인 다른 모자들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제품 라인 이름은 햇(Hat)이지만, 실제로는 캡(Cap)이기 때문에 구매를 고려한 독자라면 제품 사진을 미리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에서도 국내 기업의 ‘E(환경·Environment)’를 위한 변화시도를 볼 수 있다. SK케미칼은 망가진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한 화장품 용기를 올해 안에 선보일 계획이다.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화장품 업체는 SK케미칼의 코폴리에스터 소재를 사용한다.

화장품 용기는 온도, 습도를 유지해야 하고 미생물 등으로부터 화장품이 입을 손실이나 오염을 방지해야 하지만 또 가벼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이 많은 편이다. 지난해 38조 원 규모에 달하는 세계 화장품 용기 시장의 58.6%가 플라스틱이다.

SK케미칼의 재활용이 눈에 띄는 것은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원재료 단계로 플라스틱을 되돌린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재활용은 페트병 등을 수거해 부수고 쪼개 제품 전단계로 플라스틱을 되돌려 재사용하는 물리적 재활용이 이뤄져왔다. 다만 물리적 재활용을 거치면 색깔이 생기고 어두워보이기 때문에 투명한 용기를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섬유나 음료수병 등의 재활용에 한정됐다. SK케미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제품 전전 단계인 원료 상태로 되돌려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법이다. 때문에 화장품 용기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가능해진다. SK케미칼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화장품 용기는 올해 3분기(7~9월) 본격적인 상업생산이 이뤄질 예정이다.

옷장을 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왜 늘 입을 게 없나’라지만 ESG 패션에선 선택지가 다양하다.

한때 학생들에게 ‘제2의 교복’이었고 여전히 인기가 많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만든 ‘노스페이스 K에코 삼다수 에디션’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재킷과 티셔츠에 페트병 모양이 그려져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이 의류들을 만든 원료가 생수 제조사인 제주삼다수가 제주도에서 수거한 페트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섬유원료 제조 기업인 효성티앤씨가 제주도에서 수거해 온 페트병을 친환경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제주’가 자켓 등에 사용된다.

동네 친구와 만나기 편한 후드티, 맨투맨, 조거팬츠 등을 찾는다면 제주도산(産) 대신 ‘메이드 인 서울(made in seoul)’ 제품이 있다. 효성티앤씨가 서울 금천·영등포·강남 3개구에서 수거한 페트병으로 만든 섬유 ‘리젠서울’을 받아 플릿츠마마가 만든 ‘러브서울’ 에디션을 3월 선보였다. 플릿츠마마 홈페이지 등에서 5만~6만 원대로 구매가 가능하다.

페트병이 의류가 되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우선 수거해 온 페트병을 칩으로 잘게 쪼갠다. 이 과정을 플레이크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수입해왔지만 삼다수 에디션과 러브서울 에디션은 효성티앤씨의 구미 공장 옆에 있는 협력사에서 맡는다. 수입했을 때보다 물류 비용 등이 절감되는 효과는 덤이다. 그렇게 쪼갠 플라스틱 조각에 불순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걸러낸 플라스틱 칩을 고열로 녹여서 폴리에스터 실(원사)로 뽑아낸다.

이렇게 제주도, 서울 등에서 주워온 페트병으로 섬유 원료를 짜내고 있는 기업 효성티앤씨는 독자들에게 조금 낯설 수도 있는 기업이다. 그렇다고 경알못이라 자책하진 말자. 효성티앤씨는 주로 수영복, 스타킹 등 신축성이 필요한 의류에 쓰이는 스판덱스나 강도 높은 합성섬유 폴리에스터, 나일론 원사 등을 제조해 의류제조사에 파는 ‘B2B(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기업이라 그런 것이니깐.

그런 효성티앤씨가 패션사업까지 손을 뻗었다. 2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맨투맨과 후드티를 만드는 친환경 의류 브랜드 ‘G3H10’을 최초 공개하고 펀딩에 나섰다. 원사제조부터 봉제까지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섬유제조사가 맡았다.

얼핏 비밀번호처럼 들리는 G3H10은 그린(Green) 휴먼(Human) 하모니(Harmony) 등 환경, 지속가능성을 상기시키는 단어들을 모아놓은 의미기도 하지만, 브랜드를 담당하는 팀이 공(G)덕역 3번 출구에 위치한 효(H)성 빌딩 10층에 있어서기도 하다. 50만 원을 모으려던 펀딩에 2900만 원(5805%)이 쏠리는 대박을 친 효성티앤씨는 17일부터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무지 반팔티 펀딩에 들어간다고 하니 편하게 입을 수 있는 ESG 패션을 찾는 독자라면 참고하자.

옷을 다 입었다면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마지막은 가방과 신발이다.

이번에도 석유화학기업이 등장한다. 롯데케미칼이 올해 상반기(1~6월)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루프’는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가방과 신발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친환경 패션을 추구하는 LAR을 포함해 임팩트스퀘어, 수퍼빈 등의 스타트업과 손을 잡았다. 폐페트병을 수거, 분쇄, 원료화, 원사와 원단을 만들어 가방과 운동화를 만들었다. 신발은 6만~9만 원대, 크로스백은 2만3000원 백팩은 5만9000원에 LAR의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