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국민연금 석탄 투자 배제 기준 마련…시행까진 갈길 멀어

뉴시스

입력 2021-05-08 00:08 수정 2021-05-0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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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신규 해외 석탄발전 금융 중단 선언에도 부동
국내 113곳 '기후금융 지지 선언'…국민연금 불참
"석탄발전 투자 제외부터…기업 목록도 공개돼야"



국민연금이 하루빨리 석탄 산업 투자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고 있지만, 석탄 산업 정의와 대상 기업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만 가능해 실제 석탄 산업 투자 배제 시행까지 최소 1~2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하고, 올해 안에 NDC를 상향하겠다는 정부와 달리 국민연금은 변화 속도가 느려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일각에선 해외 연기금 사례를 참고하더라도 국민연금이 먼저 석탄발전소와 같은 신규 투자 배제를 비롯해 석탄 산업에서 발을 빼고, 탈(脫)석탄을 선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석탄 산업과 연계 가능성이 있는 기업 목록부터 공개돼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곳곳에서 탄소 중립 강조하는데…몇 발 느린 국민연금
8일 보건복지부(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달 30일 오후 5차 회의를 열고 석탄 투자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배제 전략(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 여부를 논의한 끝에 다음 기금위에 재상정하기로 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부문에서 문제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제도다. 석탄 투자에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하면 기업은 연기금 투자를 받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이나 관련 산업 투자를 줄여야 한다.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에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한 건 2050년 탄소 중립, 국제적인 연기금의 탈석탄 투자 등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월30일 LEDS, NDC를 유엔기후변화 사무국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NDC를 추가 상향해 올해 안에 유엔에 제출하고,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9일 금융그룹 계열사, 국책은행(IBK기업은행),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한국교직원공제회 등 공적 연기금과 공제회 등 113곳이 ‘기후금융 지지 선언’을 했다. 이들은 탈 탄소 산업 투자 활성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적극 도입, 기후 변화 관련 상품 출시 등을 추진한다.

해외 공적 연기금들은 석탄 산업 투자 중단에 적극적이다. 세계 2위 연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 스웨덴 연기금(AP), 네덜란드 공적 연금(APG) 등도 석탄 산업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연기금 규모 세계 1위인 일본 공적연금펀드운용법인(GPIF)은 ‘탄소 효과 지수’를 개발해 환경을 고려한 책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석탄 산업 투자 중단 선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국민연금은 이제서야 석탄 산업 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뒤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앞서 지난 2019년 11월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수립 시 네거티브 스크리닝 도입 필요성, 적용 대상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후 올해 2월 석탄산업 대상으로 도입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1년 반만의 논의에서 석탄산업 정의, 적용 분야, 도입 방식 등이 정해지지 않아 연구 용역과 해외 연기금 사례 등을 참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대해 양성일 복지부 1차관은 지난달 29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대응에 공감하지만, 석탄산업과 대상 기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가 핵심”이라며 “올해 또는 내년 초까지 외국의 규제 사례나 대상 기업 규정을 보면서 여러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탄 투자 배제 기준 마련 골치…“기업 리스트 공개해야”
국내 법령과 제도에는 아직 석탄산업과 석탄 투자에 대한 정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법령에 ‘석탄산업법’과 같은 법 시행령·시행규칙이 있지만, 말 그대로 석탄광업과 석탄가공업에 대해 다루는 법이다.

탄소 중립 주무 부처 환경부가 올해 상반기 중에 내놓을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와 ESG 경영 활동 중 환경(E) 부분을 평가하는 안내서는 환경책임투자와 녹색 산업 지원을 제도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석탄 투자’ 정의 확립 과정에서 참고할 수는 있지만, ‘석탄 투자’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내에선 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국민연금기금 기후 위기 책임투자 도입 제안’을 내고 기후 위기를 ESG 중점 관리 사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올해 1월 말 기준 850조원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세계 3위 연기금임에도 지난 10년간 석탄 산업에 10조원의 자금을 제공해 사회적 책임에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국내외 석탄발전소 투자 및 채권 인수 금지, 석탄발전소 건설·확장·유지를 위한 프로젝트 투자 불참, 연간 석탄 사용량 200만t 이상 및 온실가스 배출량 500만t 이상 투자 대상 우선 배제 등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기후정상회의에서 언급한 석탄발전소 신규 투자 제외와 함께 대체 투자(사모·부동산·인프라) 즉각 철회, 투자 비중 제한 등도 내놨다.

환경운동연합은 선제 조건으로 석탄발전과 연계된 사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 관련 재무 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 지지, ‘탄소정보공개프로그램’(CDP) 서명기관 등재, 탈석탄 금융 선언, 2030 석탄 투자 철회 로드맵 수립 등을 제시했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핵심은 단기간에 2030년까지 꾸준히 석탄 산업 배제를 강화하고, 석탄 산업 관련 업종과 가치 사슬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해외 사례를 참조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기업 리스트가 공개돼 있지 않았고, 어느 기업이 있는지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기업 목록부터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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