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이자 사회의 큰 어른 떠나보낸다”…故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봉헌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5-01 13:08 수정 2021-05-0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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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고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사진공동취재단)
“정 추기경님은 교회의 사제이자 사회의 큰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님을 떠나보내는 심경을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정 추기경님을 마음으로 의지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뵙는 것만도 해도…큰 힘이 됐습니다.”

1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에서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 중 눈시울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이어가다 감정이 북받친 듯 2분여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누군가 수건을 건네 놓기도 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린 염 추기경은 “우리 교회와 사제들에게 김 추기경님은 아버지, 정 추기경님은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다”며 “정 추기경님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라는 사목표어처럼 사셨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행복에 대해 늘 강조하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릴 때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을 실천하셨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주교단의 입장으로 시작한 이날 장례미사는 시작예식과 말씀 전례, 성찬 전례, 영성체 예식, 추도식, 고별식 등으로 2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이날 정 추기경은 시신이 안치돼 있는 삼나무 관 앞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관 위에는 그의 사목표어 구절이 있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장례미사에는 방역 지침에 따라 사제 80명과 유족 등 250명이 참석했다. 명동대성당 앞에는 1200여명의 추모객들이 성당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자리를 지켰다.

염 추기경은 강론 중 “정 추기경님은 교회법의 권위자이자 기도하는 분이었다”며 “같은 곳에서 산책하고 기도하면서 늘 우리나라, 교회와 사제, 북한 동포,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진행된 병자성사 당시 일화도 언급됐다. “마지막에 추기경께서 ‘하느님 만세’를 외쳐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의미였다. 정 추기경님은 항상 순교자의 삶을 본받을 것을 다짐했는데, 이미 천국에서 김대건 신부와 시복시성이 추진 중인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셨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대독한 애도 서한에서 “오랜 세월 한국 교회와 교황청을 위하여 봉사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 하겠다”며 “부활의 확고한 희망 안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는 “정 추기경님은 1931년 태어나신 후 이 순간까지 하느님 섭리에 따라 대장정 마라톤을 앞만 보고 뛰어 완주했다”며 “이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로 한국 사회를 비춰주시고 이 땅의 모든 이가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도록 성모님께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소신학교 시절 제자인 백남용 신부는 “한잔의 와인을 사랑했던 추기경님, 이제는 ‘예수님 직영 공장’에서 나오는 와인을 편히 음미해 주십시오”라며 “이제는 매년 책 한권 쓰시는 수고를 내려놓으시고, 천상의 주님 신탁에서 편히 음미해 달라”고 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고 싶다던 추기경님은 이제 큰 별이 되셨다”며 “정 추기경님이 지금 말씀하실 수 있다면 모두에게 감사하다, 고맙다고 말씀 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대성당을 떠나는 정진석 추기경의 관이 실린 운구차량.
정 추기경은 이날 장례미사를 끝으로 90년에 걸쳐 인연을 맺은 서울 명동대성당과 작별을 고했다. 1931년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출생 나흘 만에 이곳에서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1961년 사제 서품과 이로부터 50주년을 맞은 금경축(金慶祝), 60주년인 회경축(回慶祝)도 모두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장례미사 뒤 운구 차량은 경기 용인시 성직자 묘역으로 향했다. 주교 묘역 중 선종 순으로 묘지 위치가 정해진다. 옆에는 2010년 선종한 김옥균 주교, 그 옆에는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묘가 있다. 정 추기경의 묘비에는 그의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28일 조문이 시작된 뒤 사흘간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각계 인사 등 4만 6000여명이 정 추기경의 빈소를 찾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 애도 서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

전 서울대교구장이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저는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이에 서울대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기도로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오랜 세월 한국 교회와 교황청을 위하여 봉사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연민 어린 사랑에 추기경님의 고귀한 영혼을 맡겨드리는 장엄한 장례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함께하겠습니다. 부활의 확고한 희망 안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슬퍼하는 모든 분께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보증하는 징표로 저의 진심 어린 사도적 축복을 보냅니다.

2021년 4월 28일, 바티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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