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를 닮은… 푸른눈의 새하얀 고양이[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입력 2021-04-30 14:00 수정 2021-04-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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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케치 ‘양구’

그림 전승훈 기자

강원도 양구에서 백자를 만드는 도예가 부부의 작업실에는 흰색 고양이가 산다. 새하얀 털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진주’다. 청화백자의 흰색과 푸른색이 오묘하게 살아 있는 고양이에게 옮겨간 듯한 모양새다. 도예가 부부의 인스타그램에서 스타로 떠오른 고양이 진주는 작업실 창가에 진열돼 있는 백자 작품들 사이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걸 좋아한다. 진주는 크고 작은 백자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니면서도 한번도 깨뜨린 적이 없다. 말 그대로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김덕호 이인화 도예가 부부가 키우는 백자처럼 하얀 고양이 ‘진주’.




김덕호-이인화 도예가 부부는 2015년 강원 양구군 방산면에 있는 양구백자박물관 백자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부임하면서 강원도로 이주했다.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도자를 전공한 부부 도예가인 두 사람은 양구 백토(白土)의 매력에 푹 빠져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온 것이다.


두 사람은 양구 백토만큼이나 양구라는 지역에 매료됐다.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은하수, 봄이 되면 하천에서 들려오는 얼음 깨지는 소리, 비 온 뒤 산자락에서 피어오르는 멋진 물안개까지 매 순간의 경험들은 작업의 또 다른 양분이 된다.

연구소에서 생활하던 부부는 양구 박수근미술관 부근의 예술인촌에 직접 집을 지었다. 1층엔 작업실과 가마가 있고, 2층에는 주거공간과 거실 겸 전시실이다. 박공 구조의 높은 천장과 사방으로 열린 창은 개방감을 극대화한다. 거실의 유리창 주변은 새하얗고 투명한 부부의 백자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곳에서 쓰이는 밥그릇과 찻잔, 접시 등 생활 속에 쓰이는 모든 기물이 부부의 작품이다. 이케아에서 샀다는 부엌 가구의 손잡이도 흰색 도자기로 직접 구워서 붙였고, 심지어 고양이 진주의 밥그릇도 백자로 구운 자기다. 다음은 김덕호 도예가와 일문일답.













―집이 작업장이자 전시장이자 살림공간으로 꾸민 것이 인상적이다.

“공예가는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기술자이자 장인이기도 하다. 공예는 전시용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실생활에 쓰이는 용품이다. 항상 현실에 한 발자국을 얹고 있는 예술가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갤러리에 전시를 하다보면 작품을 구매한 고객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곳에 살면서 내가 만든 그릇을 써보고, 손님들도 만져보고 체험하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이러한 피드백이 작품 제작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강원 양구는 백토의 고장이다. 양구 백토는 400여 년 전 조선 왕실 도자를 만들던 주요 재료로, 방산면 일대에 다량 매장돼 있다. 경기도 이천, 광주에 조선 왕실이나 귀족들이 쓰던 백자를 생산하는 관요(官窯)에서는 최고급 품질의 흙인 ‘양구 백토’를 가져다 썼다. 조선시대 500호에 지나지 않는 양구 주민들은 백토를 캐기 위한 부역에 시달린 나머지 “납품하는 양을 줄여달라”는 소명을 여러차례 올렸을 정도였다.

부부는 같은 재료, 같은 기법을 쓰지만 서로 다른 성향으로 백자를 표현해낸다. 서로 다른 색상의 점토를 다양한 순서로 겹쳐 줄무늬 같은 문양을 만들어내는 ‘연리(連理)기법’으로 만든 흙을 물레로 성형하는 과정은 같다. 그러나 김덕호 작가는 표면을 다양한 방법으로 잘라내 내부에 퇴적돼 있는 연리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을, 이인화 작가는 기벽의 일부분을 극도로 얇게 깎아 연리된 백자토의 투광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각각 하고 있다.


―‘연리’ 기법은 무슨 뜻인가.


“뿌리가 다른 두 그루 나무가 하나의 몸처럼 합쳐져 자라는 것을 ‘연리지(連理枝)’ 나무라고 한다. 이처럼 두가지 색깔의 흙을 합쳐서 물레를 쳐서 자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사실 두가지 흙을 합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흙이 서로 성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가마 안에서 구울 때 깨지거나 금이갈 수가 있다. 두가지 흙을 붙이면 필연적으로 기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진공작업을 하는 과정에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보니 매력을 많이 느꼈다. 이인화 작가(아내)의 작업은 백자의 투광성을 주제로 한다. 같은 흰색이라도 다른 흙을 쓴다면, 빛을 비춰봤을 때 투광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는 두가지가 겹으로 쌓인 흙을 면을 쳐서 내부의 레이어(층)를 다시 드러나게 하는 작업을 한다. 원래는 수평적인 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연리인데, 면을 치게 되면 종적인 움직임이 더 나타난다. 이런 영감을 받은 것은 2014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청화백자 전시회였다. 외국에 나가 있는 청화백자를 일일이 빌려와서 개최한 엄청난 전시회였다. 그 때 보고 청화백자도 컬러나 획의 느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내 작업에 접목시켜보고 싶었다. 붓 대신 청색 흙을 붓이라고 생각하고, 추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두가지 색을 처음에는 두겹, 그걸 다시 잘라 붙이면 네겹, 다시 붙이면 여덟겹이 된다. 그게 256겹이 되면 물레에 붙인 다음에 물레를 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로 올라가게 된다. 그 다음에 표면을 깎아내게 되면, 그 안에 겹쳐져 있는 흙의 모습들이 좀더 재밌게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에 나타나는 물결 모양의 무늬는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

“양구백자박물관 뒤편에 맑고 깨끗한 수입천이 흐른다. 겨울에 수입천이 녹았다가 얼었다가를 반복하게 되면 한천에 있는 얼음에 결이 생긴다. 깨진 곳이 있다가 다시 얼기도 하고, 또 갑자기 얼게 되면 기포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결이 생긴 얼음 모양이 흙이 연리되서 도자기가 되는 모습하고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은 작가노트를 쓴다. 겨울철 수입천의 맑고 투명한 얼음을 보면서, 흰색과 흰색이 어우러짐에도 결이 생기는 도자기 작업에 관련된 생각과 글도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



도자기의 가장 클래식한 색깔은 청색과 흰색이다. 그리고 양구에 와서 가장 많이 보게 된 것이 밤하늘이다. 방산 백자박물관 근처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방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사방에 산이 둘러 싸고 있다’고 해서 방산이다. 해도 빨리 지고, 저녁이 엄청 길다. 우리가 왔을 때 우주쇼처럼 별똥별 떨어지는 날도 많았다.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아서 까만색 작업도 하게 됐다. 그래서 흰색, 푸른색에 이어 검은색을 주제로 한 연리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 양구라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런 작업을 강요했다. 연리작업은 그런 식으로 계속 풀고 있다.”

―도예가가 된 계기는.

“대학에서 디자인, 공예를 전반적으로 배웠다. 제대 후 잠깐 아르바이트로 축제행사 기획하는 걸 했었는데, 그 때 도예가 선생님들을 인터뷰하게 됐다. 그 때 도예가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어떻게 사시는지도 궁금했는데,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사니까, 그냥 하면된다’고 하셨다. 양구백자연구소에서 학교 행사가 있다고 교수님들이 와보라고 해서 한번 와봤는데 작업환경이 서울이랑 많이 달랐다. 서울에서는 20~30평 공간을 4~5명이 나눠서 쓰는데, 여기는 80평 정도 공간을 단독으로 쓸 수 있었다. 우린 부부니까 함께 와서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월에 왔다가 8월에 정착하게 됐다. 굉장히 급하게 진행됐다.”

백자토는 대표적인 도자기 재료 중 하나다. 1300℃를 웃도는 고온에 견디며 유리질화(도자기 태토가 유리질로 되는 것)하여 뛰어난 백색도와 강도, 투광도를 갖게 되는 것이 도자기 기술이 정점이었다. 백자는 조선의 청렴결백과 단순함, 절제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도의 정제된 재료와 기술로만 완성시킬 수 있는 백자의 아름다운 물성, 그리고 조선백자의 단순미는 부부의 작업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백색의 광맥에서 채굴한 덩어리, 산처럼 쌓아놓은 도석에 수천수만 번의 손길을 더해 불순물을 걷어내고, 이를 방아로 잘게 부수어 고운 입자로 만든 뒤, 맑은 수입천 물을 섞어 백토로 가공하기까지의 조선시대 행해진 제작 방식의 무수한 시간적 기술적 층위를 알게 된 이상 작업의 어느 과정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양구백토는 어떤 점에서 좋은가.


“한국은 최고급 도자문화를 가꿔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도자문화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양구백토의 경우 굉장히 많은 기록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승정원 일기 등에 보면 양구백토 품질에 대해 ‘형태가 잘 무너지지 않고, 백색이 뛰어나다’는 우수성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그걸 연구하다보니 양구 백토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다. 광주, 이천에 있던 관요도 양구 백토의 공급이 뒷받침 돼야 가능했던 것이다. 양구 백성들이 ‘백토 캐는 부역을 줄여달라’고 상소를 올리면, 관요에서 ‘양구 흙이 좋은데, 그 백토가 없어 힘들다’고 또 요청하는 줄다리기를 벌였던 것이다. 양구백토는 진주백토랑 섞어서 쓰기도 했다. 지금도 양구 백토를 현대작가들에게 나눠준 다음, 결과물을 양구백자박물관에서 계속 수집하고 있다.”

글·그림·사진 양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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