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꼬이는 부동산 정책, 커지는 시장 불안

황재성기자

입력 2021-04-30 11:53 수정 2021-04-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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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안정을 목표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정책들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정부가 획기적인 공급 확대 방안으로 자평했던 ‘2·4 대책’은 공직자 부동산 투기에 발목이 잡히면서 신규 택지 공개 일정이 하반기 이후로 대폭 늦춰졌다.

정부가 산정방식 공개로 해소하려던 공시가격 부실산정 논란은 공개된 정보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불만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부동산 보유세 완화 작업은 찬반이 엇갈리면서 논의 자체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책 혼선이 신뢰 저하로 이어지면서 또다시 부동산 시장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투기 우려에 발목 잡힌 ‘2·4 대책’
국토교통부는 어제(29일)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2·4대책’의 후속조치로 신규 택지 후보지를 공개하면서 3만1000채 물량을 지을 수 있는 지방 3곳(울산·대전·세종)만 공개했다. 나머지 13만1000채 물량을 지을 후보지는 하반기 이후 공개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상반기에 모든 후보지를 공개하겠다던 계획에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후보지에 대한 최근 5년 간 거래상황을 분석한 결과 심각한 수준의 투기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거래량과 외지인 거래가 크게 늘고,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경찰 수사 등을 통해 투기행위를 색출하고 불법이 확인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 사전 절차를 거친 뒤 후보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상보다 투기성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경우 후속조치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2·4대책’으로 공급하기로 한 83만6000채 가운데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추진할 수 있는 물량은 신규 택지(26만3000채)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도 문제다.

나머지는 대부분 토지나 건물의 소유주 동의를 받아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협상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일정이 늦어지거나 사업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서울시가 오세훈 신임시장이 취임한 이후 ‘민간 주도’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정부가 ‘2·4대책’에서 밝힌 서울시내 공급물량(32만3000채)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 불만만 키운 공시가격 산정기준 공개
정부는 29일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결정 공시하면서 부실산정에 대한 불만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처음으로 산정기준을 공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부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거나 “공시가격 현실화보다 상식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항의와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이런 반응은 정부가 공개한 가격산정 근거가 구체성이 떨어진 데서 비롯됐다.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www.realtyprice.kr)’에 공개된 기초 자료에는 주택특성과 가격 참고 관련 내용만 있을 뿐 적정시세 산정기준이나 현실화 제고율 등에 대한 정보는 빠져 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열람이 가능했던 산정 기초자료 파일도 올해는 볼 수 없게 막아 놨다.

공시지가에 대한 산정의견은 거의 동어반복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택마다 특성이 모두 제각각인데도 한결같이 ‘공시가격은 교통여건, 공공시설 및 편의시설과의 접근성, 세대수, 경과연수, 공용시설, 층별·위치별·향별 효용, 전용면적 등 가격형성 요인과 유사 공동주택의 거래가격, 가격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산정했다’고 정리돼 있다.

3월에 공개된 공시가격 초안에 대한 이견(4만9601건)이 지난해(3만7410건)보다 30% 넘게 늘었지만, 이를 반영해 수정한 공시가격이 5%에 그친 것도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다.

문제는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라 이같은 불만과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2030년까지 시세의 90%를 목표로 매년 1~2%포인트씩 높아지게 돼 있다. 단독주택은 2035년을 목표로 매년 1.8~3.2%포인트, 토지는 2028년까지 매년 3%포인트 이상 오른다.

특히 단독주택과 토지는 내년에 산정될 공시가격의 기준이 되는 표준가격이 올해 12월 공개된다. 연말에 공시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난항 겪는 보유세 완화 논의


공시가격 급등에 따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가 크게 오를 것으로 확실시되자, 정부와 여당은 이에 대한 보완 작업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4·7 보궐선거’의 참패에 큰 영향을 미친 원인 중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에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이에 따라 여당에서는 재산세(부과시기·7,9월)와 종부세(11월)의 산정기준 시점인 6월 1일 이전에 관련 규정을 손봐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즉 5월 중에 필요한 절차를 취하자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화답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국회 등에서 잇따라 부동산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홍 직무대행은 21일 부동산시장 관계 장관회의에서는 “그동안 제기된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당정 간 협의하는 프로세스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반대 여론에 급제동이 걸렸다.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세제 완화 논의는) 문재인 정부 지우기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유세 완화 등과 관련한 논의 자체가 민주당 대표가 결정되는 다음달 2일 이후로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 고개 드는 시장의 우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목표로 추진해온 각종 정책이 잇따라 차질이 발생하자 서울 아파트값도 상승세를 키우는 등 시장의 우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넷째주(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값은 0.08% 올랐다. 이달 초(5일) 0.05% 수준으로 줄어들며 주춤했던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폭을 키운 것이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들이 많이 올랐다. 노원구가 0.16%로 가장 많이 올랐고, 송파(0.15%) 강남·서초(0.13%) 서초(0.12%) 양천(0.10%) 등이 모두 서울 평균 상승률을 웃돌았다.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계획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책 혼선은 신뢰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제기된 문제들을 서둘러 정리하고, 정부가 다시 한 번 구체적인 정책 일정을 제시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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