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족발골목 1세대 ‘뚱뚱이할머니집’ 창업자 별세

김수현 기자

입력 2021-04-29 17:09 수정 2021-04-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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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장사 하면서 야박해지지 말자.”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원조 족발 음식점으로 유명한 ‘뚱뚱이할머니 족발’의 창업자 전숙열 할머니(93)가 지난달 12일 노환으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평북 곽산 출신인 고인은 6·25 전쟁 때인 1953년 남편과 함께 만주를 거쳐 부산에 정착했다. 이후 고인은 실향민촌이던 ‘장충동 56번지’로 이주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던 동네에서 고인은 버려진 미군 군복을 주워 직접 꿰매 팔면서 사업 밑천을 다졌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려해 서로 별명을 부르던 실향민들 사이에서 고인은 ‘뚱뚱이’로 불렸다.

1957년 고인은 장충동에 ‘뚱뚱이할머니 족발’의 시초인 식당 ‘평안도’를 개업했다. 원래부터 고인의 식당에 족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주거리를 늘려 달라”는 단골들의 부탁에 저렴하지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다가 족발을 선택했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북한식 된장 족발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고인은 된장 대신 간장으로 맛을 냈다.

고인은 세 번이나 가게를 옮기면서도 장충동을 지켰다. 세 번째로 가게를 열며 고인은 이른 새벽부터 장사를 준비하며 아침을 거르는 동대문 상인들을 위해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다. 고인의 며느리이자 2대 사장인 김명숙 씨(67)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머리에 족발과 소금을 이고 새벽 배달을 나섰다”라며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리며 식당 한 편에서 쪽잠을 주무셨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족발은 1963년 장충체육관 재개장으로 레슬링과 권투 등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1987년 전후 하나둘씩 생긴 족발 가게들이 10여 곳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장충동 족발거리’가 형성됐다. 몇몇 가게는 고인이 직접 찾아가 육수 만드는 법도 알려줬다고 한다.

현재 3대째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은 지금도 전 할머니 때처럼 오전 4시부터 야채를 다듬고 육수를 준비한다. “63년 가게를 하는 동안 조림물(육수)의 역사도 63년”이라며 고인은 족발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김 씨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받아 앞으로도 좋은 품질을 지키는 가게가 되겠다”라고 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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