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의 주얼리어답터]손목에서 파도치는 ‘호머’의 푸른 바다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톰블리’의 낙서

동아일보

입력 2021-04-30 03:00 수정 2021-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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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첼라티 ‘아트 컬렉션’ & 그라프 ‘톰블리 컬렉션’

그라프 ‘톰블리에 영감을 받아’ 컬렉션 ‘멀티셰이프 다이아몬드링’.
이경민 갤러리아 명품관 하이주얼리&워치 담당 바이어
미술과 보석. 아름다움의 대명사이기도 한 두 단어는 알고 보면 서로 끊임없이 밀당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먼저 미술가들을 살펴보자. 예로부터 수많은 아티스트들은 보석으로부터 미적 영감을 받아왔다.

체코의 화가이자 장식 미술가 알폰스 무하는 1900년에 ‘원석(The Precious Stones)’ 시리즈를 발표한다. 그의 손끝에서 루비, 에메랄드, 자수정, 그리고 토파즈와 같은 아름다운 보석들이 때론 우아하고, 때론 고혹적 매력을 지닌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첼라티 ‘아트 컬렉션 이어링’.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역시 굉장한 보석 컬렉터 중 하나였다. 흥미로운 점은 항상 본인의 옷 속에 주얼리를 숨겨 아름다움을 가리곤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보석에 대한 사랑을 숨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는 ‘보석(The Gems)’ 시리즈에서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아름다운 보석들을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그렇다면 이와는 반대로 ‘주얼러’라 불리는 보석업계의 대가들이 미술을 사랑한 경우는 어떠할까. 이번 칼럼을 통해서 미술을 사랑한 주얼러들과 미술 작품이 고스란히 담긴 주얼리를 살펴보자.


주얼리로 만나는 아트 컬렉션


윈즐로 호머 ‘프라우트 목 에서의 연하고 푸른 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탄생한 부첼라티는 유니크한 디자인과 이탈리아의 전통 세공기법으로 사랑받는 하이주얼리 브랜드다. 부첼라티의 디자이너 안드레아 부첼라티와 그의 딸 루크레치아 부첼라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미학을 디자인 철학의 근간으로 두고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

이들은 2015년 부첼라티 미국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함께 흥미로운 작품 다섯 점을 공개했다. 바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아트 컬렉션(Art Collection)’이다. 이 컬렉션을 통해 클로드 모네, 윈즐로 호머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의 작품이 부첼라티의 손에서 재탄생하게 된다.

부첼라티 ‘아트 컬렉션 브레이슬릿’.
이 중 단연 압권은 윈즐로 호머의 ‘프라우트 목에서의 연하고 푸른 바다(Light Blue Sea at Prout’s Neck)’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 컬렉션 브레이슬릿’ 제품이다. 섬세한 그물을 짠 듯한 튤레(Tulle) 세공기법을 통해 재탄생한 화이트골드 소재의 팔찌는 착용자를 단숨에 파도치는 바다의 중심부로 이동시킨다. 파도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표현했던 작가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파도가 부서지고 튀어오르며 생기는 하얀 거품들을 다이아몬드로 재현해낸 점이 백미다. 마치 광막한 바다가 지니고 있는 힘과 에너지가 부첼라티의 장인정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낙서가 주얼리가 되는 순간


클로드 모네 ‘벨일 해안의 폭풍’.
영국의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인 그라프의 수장 ‘로런스 그라프’는 다이아몬드의 왕이자 현대미술 컬렉터로 잘 알려져 있다. 키스 해링과 장미셸 바스키아와 같은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들이 그의 소장 목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미술에 대한 불타는 열정은 그라프의 주얼리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결과 ‘톰블리에 영감을 받아(Inspired by Twombly)’컬렉션이 탄생했다. 사이 톰블리는 미국의 추상주의 화가로, 낙서같이 휘갈겨 쓴 그래피즘 작품을 통해 즉흥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표현하는 작가다.

그라프는 톰블리의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나선형의 리듬에 주목했다. 규칙 속의 불규칙이 혼재된 이 회오리와 같은 형상을 모티브로 다양한 주얼리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그라프 ‘톰블리에 영감을 받아’ 컬렉션 ‘멀티셰이프 루비 앤드 다이아몬드 네크리스’.
필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제품은 ‘멀티셰이프 루비 앤드 다이아몬드 네크리스’다. 생전 톰블리가 커다란 사이즈의 작품을 즐겨 그렸던 것처럼 그라프는 토털 49캐럿의 루비와 4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사용된 존재감 넘치는 목걸이로 그의 작품을 오마주했다. 생생한 루프 형태의 리듬감은 톰블리가 친구의 무동을 타고 움직이며 그린 나선형의 낙서로 유명한 ‘무제’(1968)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루비를 사용해 작가가 즐겨 사용했던 붉은색을 구현했으니, 이 순간이야말로 아름다운 낙서가 주얼리로 날개를 펼치는 순간이 아닐까.

이경민 갤러리아 명품관 하이주얼리&워치 담당 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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