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줄잇는 낙하산… “생산성본부 임원에 민노총 출신 임명 압박”

세종=구특교 기자 , 세종=남건우 기자 , 김호경 기자 , 유재영 기자

입력 2021-04-29 03:00:00 수정 2021-04-29 11:36:16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관계자 “부회장직 부적절 평가에도 정권 핵심서 왜 당장 임명않느냐 해”
靑행정관 등 ‘자리 챙겨주기’ 반복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생산성본부(KPC)의 부회장직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간부 출신 A 씨가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막판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부 유관단체나 산하기관의 ‘숨은 자리’를 정치권과 청와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그림자 낙하산’ 관행이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공석인 KPC 부회장직에 민노총 간부 출신 A 씨가 거론되고 있다. KPC는 산업부 산하 정부 유관단체로 산업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 조사를 맡고 있다. KPC 부회장은 이사회가 선임한 뒤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최종 임명된다.

A 씨는 KPC 노조 및 민노총 간부 등으로 20년 정도 일하다가 현재 KPC 산하 출판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A 씨는 경력 대부분이 노조 활동이어서 부회장직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며 “선임 절차가 있는데도 권력 핵심에서 (A 씨를) 왜 당장 부회장직에 임명하지 않느냐고 압박한다”고 말했다.

민노총 출신 외에도 청와대 행정관, 국회 보좌관 등이 정부 유관단체나 자회사 등의 숨은 요직을 맡는 ‘그림자 낙하산’은 정권 말마다 반복됐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관장이나 주요 임원은 선임 절차가 갖춰져 있어도 윗선의 입김에 좌우되기 쉽다”며 “규모가 작은 유관단체는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더 취약할 것”이라고 했다.

靑-與의원실 출신, 公기관 꽂아넣기… “전문성 없다” 노조도 반발
임기말 '낙하산 인사' 사례 보니


“4·7 재·보궐선거 끝나고 나니 청와대나 국회에서 인사 청탁이 심해졌습니다.”

한 공공기관 인사 관계자는 최근 힘 있는 곳의 인사 청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 인사들을 정부유관단체나 공공기관에 앉히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과 정부부처 인사 담당자 사이에서도 “인사 절차를 무시하는 요청이 온다” “임기 초와 달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후보에 넣으려 한다”는 말이 나온다.

○ 감시망 느슨한 유관기관에 낙하산 쉬워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직유관단체는 1282곳이다. 이 중 정부의 심의를 받는 공공기관은 350곳뿐이다. 전체 유관단체의 73%가량이 느슨한 감시망 탓에 외부 인사들의 타깃이 돼 ‘그림자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정부유관단체인 지방공기업평가원에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부산시 선대위 정책단장이던 최모 씨가 이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전문성이 있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관련 경력이 부족한 인사들은 노조 등 조직 내부의 반발이나 ‘코드 인사’ 논란에 휘말린다. 최근 IBK기업은행 자회사 IBK서비스 부사장에는 금융업계 및 공기업 경력이 부족한 청와대 행정관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김 씨는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심의를 받지 않는 정부유관단체들의 경우 인사 절차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당 단체가 자리를 마련해주는 대가로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여러 이익을 얻는 거래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공모 작업이 진행 중인 공공기관도 낙하산 논란에서 예외가 아니다. 현재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인 인천항만공사 경영부사장의 경우 최종 면접에 올라온 후보자 3명 중 1명이 전직 인천시의원이자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알려졌다. 항만공사 노동조합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공공기관과 정부 산하기관 임원 2727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정부와 여당의 ‘코드 인사’로 의심되는 사례가 466명(17%)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 임기 말 ‘마지막 밥그릇’ 두고 경쟁
현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환으로 추진된 자회사 설립이 낙하산 인사의 창구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도로공사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의 오중기 사장은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출신으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김태환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옥관리 사장은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출신이다. 지난해 10월 임명된 성기청 국토정보공사(LX) 상임감사는 LX 자회사인 LX파트너스 대표로 일하다가 자리를 옮겼다. 민주당 의원 보좌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선거캠프 부본부장 등으로 일해 온 경력이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죄 판결의 영향으로 정권 말 ‘낙하산 인사’가 ‘알박기 인사’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인사들을 압박하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 임원 임기가 보장된다’는 기대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엔 공공기관 사장들이 정권이 바뀌면 3년 임기를 못 채운 채 물러나는 게 관행이었지만 지금은 임명돼도 2년은 더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려면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공공기관 기관장 임명권을 강화하되 부적격 인사일 경우 책임을 지게 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남건우 기자 / 김호경·유재영 기자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