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與 ‘금융 포퓰리즘’, 대출 원금 탕감법까지 추진[광화문에서/정임수]

정임수 경제부 차장

입력 2021-04-27 03:00:00 수정 2021-04-27 03: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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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이슈가 됐다. 은 위원장이 “가상화폐 투자는 잘못된 길”, “거래소 폐쇄” 등을 언급하면서 전체회의에 일괄 상정된 40여 개 법안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올라간 법안에는 은행의 대출 원금 감면을 강제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법안이 포함됐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돕자는 게 입법 취지다. 정부의 방역 조치로 소득이 급감한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 원금 감면 등을 요청할 경우, 조건에 맞으면 은행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게 은행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를 어기는 은행에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징벌 조항도 들어 있다. 금소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금융사 전체에 대출 원금 감면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2월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해 전체 금융권이 지원한 자금은 320조5000억 원이 넘는다.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금융사들이 신규 대출을 늘리고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을 해줬다. 이제는 상환 유예, 이자 감면의 수준을 넘어 원금 탕감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까지 나온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19 비상 상황이라지만 부채 탕감이 의무화되면 성실하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국이 선제적 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의 배당까지 제한한 상황에서 대출 원금 감면은 민간 기업인 금융사의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금융 시스템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더 깐깐히 해 신용도가 낮은 자영업자들이 제도권 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속에 빚으로 버티는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의 어려운 처지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코로나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선의만 앞세운 채 경제 원칙과 금융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을 내놓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

여당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금융권 팔 비틀기에 나선 건 한두 번이 아니다. 21일 한 토론회에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1년에 수십조 원을 버는 은행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해 대출 금리 1%포인트 정도는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윤후덕 의원은 “은행 창구에서 정부 방침 때문에 대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더라. 그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심판한 것 같다”며 4·7재·보궐선거 패배의 원인을 은행 탓으로 돌리는 발언도 했다. 연초엔 은행권의 이익공유제 동참을 압박하며 ‘이자 규제 특별법’까지 거론됐다.

이러니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금융 포퓰리즘이 남발되면서 시장이 왜곡되고 엉뚱한 정책 효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 몫으로 돌아간다. 정치권이 은행돈을 쌈짓돈처럼 여기고 대출 금리를 포퓰리즘 정책의 도구 정도로 여기는 한 한국 금융의 경쟁력 제고는 요원하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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