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역 남는 공간 활용해 청각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만들었죠”

송혜미 기자

입력 2021-04-27 03:00 수정 2021-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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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고용공단, 서비스직 확대 나서

21일 대전역 네일케어 매장 섬섬옥수에서 청각장애인 근로자(왼쪽)가 청각장애인 의사소통을 위한 앱인 ‘마음 톡’을 통해 손님과 소통하고 있다. 섬섬옥수 대전역점 제공


‘계약이 끝나고도 1년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절망이 컸어요.’

21일 오후 서울 용산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소해 씨(34)가 스마트폰에 이렇게 글을 적었다. 박 씨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말을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이다. 열 손톱에 화려한 색과 비즈 장식을 입힌 그는 네일아트가 좋아 3년간 네일 관리사로 일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일하던 매장에서 고용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서비스직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다.

그런 박 씨가 이달부터 매일 용산역으로 출근 중이다. 용산역에 위치한 네일케어 매장 ‘섬섬옥수’에서 네일 관리사로 새로 일하게 된 것. 이날도 일을 마치고 기자와 만난 박 씨는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적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웃었다.

○철도역 활용해 장애인 서비스 일자리 창출
아직까지 한국의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노무직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근로자 19만772명 중 8만4023명(44.0%)이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무직(15.5%), 장치, 기계 조작 및 조립직(10.5%), 서비스직(9.5%)이 뒤를 잇지만 단순노무직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때문에 장애인 근로자들이 저숙련 일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다른 직종에서도 맞춤형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애인고용공단이 올해 시작한 ‘섬섬옥수’ 사업은 서비스직종에서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이다. 장애인고용공단이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민간기업 등과 협업해 장애인 근로자가 일하는 네일케어 매장을 만드는 게 골자다. 매장은 철도역사 안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 지어진다.

우선 한국철도공사가 주요 철도역의 유휴공간을 선정하여 무상 제공하면 국가철도공단은 이에 대한 공간을 사용승인 하게 된다. 장애인고용공단은 이 공간에 들어서 네일케어 매장을 운영할 참여기업을 모집하고, 매장 설립과 장애인 고용컨설팅을 지원한다. 현재 서울 용산역과 대전역, 부산역에 매장이 개소돼 장애인 근로자가 네일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당일 승차권이 있으면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음성 문자 변환해주는 앱으로 고객과 소통
섬섬옥수의 네일 관리사는 모두 박 씨와 같은 청각장애인이다. 취업에 취약한 여성 중증장애인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장애인고용공단 맞춤훈련센터와 같은 직업훈련기관에서 네일 케어를 교육받았다. 매장에 따라서는 지체장애인을 매니저로 두기도 한다.

청각장애인 네일 관리사는 수화를 모르는 비장애인 고객과 어떻게 소통할까. 평소라면 필담(筆談), 즉 글씨를 써 의사소통을 하지만 손톱을 관리 받는 동안에는 필담이 어렵다. 어르신 등 눈이 잘 안 보이는 상대방과도 필담을 통한 소통이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가 일상화되며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말하는 입 모양을 읽어내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그 대신 섬섬옥수에서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해 KT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앱) ‘마음 톡’으로 직원과 손님이 소통할 수 있다. 이 앱은 비장애인의 말을 문자로 변환해 보여주고, 동시에 말을 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문자로 쓴 내용은 음성으로 변환해 들려준다. 박 씨는 “이전에 네일 관리사로 일할 때는 인사말 같은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섬섬옥수에서는 마음 톡 앱을 통해 손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분위기가 한결 편하다”고 했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일을 하고 있는 청각장애인에게만 서비스되는 이 앱은 섬섬옥수뿐만 아니라 다른 일하는 청각장애인 근로자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 특수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정지호 씨(41)도 마음 톡 앱을 사용해 비장애인 동료들과 소통한다. 정 씨는 “이전에는 동료들끼리 수다를 떨 때 다른 동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써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앱 덕분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여러 직종에서 장애인이 일할 수 있게끔 다양한 일자리 발굴과 민간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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