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넘쳐나는데 맞을 사람은 없다…美 국민 30% “백신 불신”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04-26 15:03 수정 2021-04-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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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화이자 백신 접종을 앞두고 의료진이 주사기에 백신을 소분 조제하고 있다. 2021.4.15 © News1

성인 인구의 54%가 1회 이상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 고지’가 한층 가까워진 미국이 최근 고민에 빠졌다. 백신 공급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백신을 적극적으로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목표 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백신에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인구가 꽤 되는 데다 최근 얀센 백신의 부작용 우려까지 겹치면서 접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당국은 국민들의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25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를 인용해 5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접종 권장일까지 두 번째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첫 번째 백신을 맞은 사람 중 8%에 해당하는 수치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한 회 접종만으로는 기대한 면역 효과를 이룰 수 없어 3, 4주 간격으로 두 번째 접종을 해야 한다. CDC의 조사 결과 3월 7일 이전까지 모더나 백신 1회차를, 3월 14일 전까지 화이자 백신 1회차를 각각 접종한 사람 중 500만 명 이상이 4월 9일 현재 2회차 접종을 하지 않았다. 통계를 이달 말까지 더 뽑아 보면 2회차 미접종자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두 번째 접종을 거르는 이유는 우선 많은 경우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두렵기 때문이다. 1차 접종만으로 면역이 충분히 생겼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간혹 해당 지역의 백신 재고가 떨어져서 접종을 못 하는 사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백신에 대한 수요나 간절함이 줄어든 이유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백신 접종자 수는 고점을 찍고 점점 감소하고 있다. CDC의 일별 통계를 보면 일일 접종자 수는 지난해 12월 중순 첫 접종이 시작된 이후 계속 증가해 이달 초엔 하루 400만 회분의 접종이 이뤄진 날도 있었다. 지금은 하루 300만 회분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누적 접종자 증가 추세도 둔화되고 있다.

보건 분야 비영리단체인 카이저가족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수주 안에 미국의 백신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접종 열기에 ‘티핑 포인트’(변곡점)가 올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평가연구소(IHME)의 크리스 머레이 소장은 CNN방송에 “페이스북의 조사 결과를 일별로 볼 때 미국에서 백신에 대한 신뢰는 2월부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우선 성인 접종률이 50%를 돌파하면서 백신을 기꺼이 찾아서 맞으려 하는 사람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 내에서는 생체 실험 등의 악몽으로 역사적으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큰 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저학력 백인 노동자 등이 주요 백신 기피층으로 분류된다. NBC방송이 2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12%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겠다”, 7%는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면 맞겠다”고 각각 응답했다. 부작용 등 문제가 있는지 지켜보고 하겠다는 답변도 15%나 됐다. 결국 미국 국민 3명 중 1명 꼴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주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달 13일 보건당국이 혈전 부작용을 우려해 얀센 백신의 접종을 잠시 중단시킨 것도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위기의식을 느낀 미 보건당국은 연일 언론 등을 통해 남은 국민들의 빠른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장은 이날 NBC방송에서 얀센 백신의 혈전 부작용에 대해 “매우 드문 일”이라면서 “백신 접종의 이익이 그 위험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해 사람들의 ‘백신 망설임’ 현상을 지적하면서 “결국에는 우리가 안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현상과 싸우려 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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