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상장 기준, 거래소 맘대로… 허위 공시 가릴 규정도 없어

김자현 기자 , 이상환 기자

입력 2021-04-26 03:00 수정 2021-04-2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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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투자 광풍]‘깜깜이 상장’에 투자자 피해 우려
정부, 법규없어 거래소에 맡겨 상장심사 허술… 1, 2개월이면 마쳐
유가증권은 모든절차 최대 1년 걸려, 수수료 의존… 경쟁적 상장 유치
투자자 보호 첫 단추 ‘공시’ 규정 등 사후관리 시스템도 안갖춰 엉망



이달 초 가상화폐에 2000만 원을 투자한 회사원 이모 씨(28)는 한 달도 안 돼 투자금 절반을 날렸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됐으니 믿을 만하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잡코인’ 몇 개를 골랐는데 하나같이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이 씨는 “거래소가 작전 세력과 손잡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거래소 대표는 수억 원어치의 가상화폐를 받고 특정 기업이 발행한 코인을 상장해주고 거래 편의를 봐준 혐의로 올 1월 대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거래소는 한때 국내 거래 규모 4위였다.

국내에 난립한 200여 개 가상화폐 거래소의 주먹구구식 ‘코인 상장’ 시스템이 투자자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형 거래소에도 가격 변동성이 큰 중소 ‘잡코인’ 180여 개가 무더기로 상장돼 불나방 같은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 깜깜이 상장… 1, 2개월 만에 코인 상장 가능



25일 동아일보가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의 상장 절차를 점검한 결과 통상 코인을 발행하는 ‘코인 재단’이 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하면 거래소가 자체 심의위원회를 통해 사업성, 재단 투명성 등을 확인하고 상장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차원의 공통된 법규나 가이드라인 없이 민간 가상화폐 거래소의 100% 자율에 맡겨지는 구조인 것이다. 한 대형 거래소는 재단의 프로젝트 백서(사업 계획서), 기술 검토 보고서, 토큰 분배 계획서, 규제 준수 확약서 등의 서류를 받아 내외부 전문가 5명 안팎으로 구성된 상장심의위원회가 이를 평가한다는 상장 심사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도 재단이 제출한 서류에 의존해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실상 재단이 코인 상장 가격과 분배 물량, 공시 등을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가상화폐 거래소의 대부분이 재단의 상장 신청을 받은 뒤 심사와 계약을 거쳐 실제 상장에 이르기까지 1, 2개월 정도가 걸리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자기자본 규모, 매출액, 감사 의견 등 최소 9가지 심사 기준을 충족하고 6개월에서 1년간 까다로운 상장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 한국 대형 거래소는 188개, 일본은 5개 상장


가상화폐 시장에서 옥석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다 보니 검증이 안 된 잡코인도 상장되고 있다. 25일 현재 국내 대형 거래소인 업비트에는 178개, 빗썸에는 174개, 코인원에는 188개의 가상화폐가 상장돼 있다.

이와 달리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는 국내의 3분의 1 수준인 58개 코인이 상장돼 거래되고 있다. 유럽 최대 거래소인 비트스탬프는 21개, 일본 최대 거래소인 비트플라이어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5개 코인만 상장돼 있다.

국내 거래소들이 거래 수수료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어 정체가 불분명한 코인 등도 최대한 상장을 허용해 거래량을 늘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 이후 사후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투자자 보호의 첫 단추로 꼽히는 공시 규정이 전혀 없어 코인 재단이 허위 공시를 하더라도 이를 적발하거나 처벌하기 쉽지 않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인력은 얼마 없는데 상장된 코인이 너무 많아 관리가 힘들고 시세 조작에 대한 우려도 크다”며 “주식시장처럼 상장 규정 등에 대한 부분이라도 선제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이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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