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산책로 800m에 230명 인파… 대부분 음주-5인이상 모임도

조응형 기자 , 박종민 기자 , 오승준 기자

입력 2021-04-26 03:00 수정 2021-04-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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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밤 10시 청계천은 거대한 술판
식당 문 닫자마자 우르르 “실외 5인이상 집합금지 몰랐다”
청계천관리처, 단속 권한 없어 계도땐 지키는 척하다가 제자리
실외서 감염되면 경로도 불분명… 깜깜이 경로, 역학조사 사각지대


24일 오후 10시 20분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시민들에게 서울시설공단 청계천관리처 소속 안전요원이 “청계천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시민들은 안전요원이 요청할 땐 잠시 술을 치워두는 모습을 보였으나, 안전요원이 떠나자 그대로 다시 술을 마시는 이들이 많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여긴 야외라서 5명 이상 모여도 되는 줄 알았어요.”

24일 밤 서울 청계천 관수교 인근에서 술을 마시던 남녀 6명은 서울시설공단 청계천관리처 관계자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자제를 요청하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일행 중 하나인 대학생 이모 씨(22)는 관계자가 자리를 떠난 뒤 “일행이 많아 일부러 식당에 안 가고 청계천에 왔다”며 “실외에서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적용되는 줄 몰랐다”고 머쓱해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방역수칙을 준수했느냐 여부가 아니다. 바깥이라도 사람들이 밀집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언제든 전파될 수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당연하다. 코로나19는 비말(침방울)로 전염되기 때문에 야외라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특히 야외 확진은 감염 경로마저 불분명해 역학조사도 쉽지 않다.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 밀집된 술판, 방역수칙 요청해도 효과 없어

24일 오후 10시 반경 800m 정도 되는 청계천 광교와 관수교 사이의 인파를 세어봤더니 23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촘촘히 앉은 이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특히 삼일교 밑 돌계단에서는 30여 명이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착한 모습도 보였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실내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신 시민이 많다. 해당 지침은 실내외 구분이 없다”라고 우려했다.

야외라고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남녀 예닐곱이 뒤섞인 한 무리는 생선회 등을 차려놓고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떡볶이와 컵라면을 안주로 삼아 ‘소맥’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거나한 술자리 탓인지 돌계단의 그늘진 구석에는 취객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 토사물 흔적까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시 조례인 음주 금지를 어기는 것도 모자라서 먹다 남은 술병이나 음식물 등을 그대로 버리고 가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며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청계천은 모두 28명이 7명씩 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순찰한다. 총길이 11km에 이르는 청계천에서 안전요원은 7명뿐인 셈이다. 그마저도 방역수칙 준수와 음주 금지 등을 계속해서 알려줘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관리처 관계자들과 동행해봤더니 “술 마시면 안 된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안내를 받을 땐 지키는 척하다가 금방 다시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 “단속 권한 없는 계도만으론 방역 한계”


청계천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설공단이 관리 및 운영 책임을 맡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관리와 운영 업무는 시설공단에 일임돼 있다”며 “일상적인 방역 업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자치구 4곳으로 이어지지만 “방역 관리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현장 순찰 등 1차 방역은 서울시설공단이 맡고, 구청은 민원이 들어올 경우에 한해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계천관리처는 계도만 가능할 뿐 과태료 부과 등 단속 권한이 없다. 행정지도를 할 순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따르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실제로 ‘니들이 뭔데 시비냐’며 몸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어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청계천 인근 상인들은 방역수칙의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43)는 “오후 10시에 손님을 내보내면 ‘청계천 가서 한잔 더 하자’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업소들의 영업시간만 제한되고 있을 뿐 실제 방역 효과는 떨어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응형 yesbro@donga.com·오승준·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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