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었다, 폈다… 종이접기 하듯 형태 바꾸니 활용도 무궁무진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4-26 03:00 수정 2021-04-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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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움직임 쏙 빼닮은 수중로봇… 물속에서 밀도 바꿔 스스로 수영
해양 쓰레기 제거 등에 활용 기대… 기하학적으로 접은 플라스틱 블록
공기 넣으면 2.6m 높이 텐트 완성… 도로 상태따라 바뀌는 바퀴도 나와


종이접기 방식으로 플라스틱 패널을 이용해 만든 팽창식 텐트는 공기를 처음에 주입하면 이후 공기 압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 공대·하버드대 제공
낙엽의 잎은 부위별로 밀도가 달라 공기의 저항이 밀어내는 힘의 차이로 팔랑거리는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수면에 떨어진 낙엽은 처음에는 물의 표면장력으로 수면에 떠 있지만 물속으로 빠지면 공기 중에서와 비슷한 움직임으로 가라앉는다. 물의 저항은 공기보다 훨씬 강해 움직임이 훨씬 커진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물속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움직임의 원리를 수중로봇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잎의 부위별 밀도를 자유자재로 바꾸면 팔랑이는 움직임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물속에서 몸체의 밀도를 바꿔 자기 몸을 스스로 접는 움직임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헤엄치는 수중로봇을 개발하고 2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종이접기’ 원리 활용… 해양오염 제거 로봇도 가능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이 나뭇잎의 팔랑거리는 모습에 영감을 받아 개발한 수중로봇. 서울대 공대·하버드대 제공
조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수중로봇은 ‘종이접기’ 원리를 활용했다. 종이를 가위로 자르거나 접착제 없이 접는 것만으로 원하는 형태나 움직임을 만드는 종이접기는 오랫동안 공학에 응용됐다. 인공위성의 태양전지판을 접었다 펴거나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기존 공학에 종이접기가 응용된 사례가 단단한 부품을 연결하고 관절을 접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조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처럼 재료 자체의 변형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 교수 연구팀은 열을 가하면 속이 부풀어 올라 밀도가 변하는 고분자 화합물 ‘폴리에틸렌 나프탈레이트(PEN)’ 소재를 활용했다. 소재를 나뭇잎처럼 얇게 편 후 열선을 부착해 원하는 부위의 밀도가 변하도록 만들었다. 바뀐 밀도에 따라 주변 물이 밀어내는 힘이 달라지면서 몸체가 이리저리 접히며 헤엄치는 힘을 만든다.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은 여러 부품을 연결해 움직이는 관절 방식의 종이접기 공학과 달리 단일 재료로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냈다는 게 특징이다. 연결 부위가 적어 외부 충격과 진동에 자유롭고 연결 부위에 오염물질이 붙어 오작동을 일으키는 문제도 최소화했다. 조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재료의 변형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것”이라며 “여러 부품을 쓰는 대신 단일 부품을 써 가벼울 뿐 아니라 제작도 쉽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개발한 로봇이 수조 속에서 스스로 헤엄치며 기름이 유출된 곳의 기름을 흡착하는 개념도 선보였다. 조 교수는 “얇은 로봇이 물속 나뭇잎처럼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했다”며 “기름 유출 등 해양오염이나 쓰레기를 제거하는 새로운 로봇 기술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중 견디는 단단한 구조물 제작에도 활용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종이접기를 이용해 평지에서는 작은 바퀴로, 험지에서는 돌기를 가진 큰 바퀴로 바뀌는 ‘트랜스포머’ 바퀴를 개발했다. 서울대 공대·하버드대 제공
종이접기 기술에 활용되는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거운 무게를 견디는 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술도 나오고 있다. 척 호버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카티아 베르톨디 교수 공동연구팀은 공기를 주입하면 접어놓은 종이가 펴지듯 팽창해 안정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2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보통 공기를 주입해 만드는 임시 구조물은 지속적으로 내부에 공기를 채워야 한다. 반면 이 구조물은 골판지나 플라스틱처럼 단단한 판을 접어놓은 형태가 공기 압력으로 펴지면서 기하학적으로 단단한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를 여러 개 이어붙이면 아치형 다리부터 대형 텐트까지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시트를 이용해 가로 2.5m, 세로 2.6m, 높이 2.6m의 임시 텐트를 설치하는 장면도 선보였다. 가로 1m, 세로 2m에 높이는 0.25m로 압축한 구조에 공기를 넣으면 점차 펼쳐지며 돔 형태의 텐트 모양을 갖춘다. 호버먼 교수는 “재난지역 비상 대피소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규진 교수 연구팀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공동으로 1t 차량에 적용 가능한 ‘트랜스포머’ 바퀴를 개발하고 이달 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포장도로에서는 작은 바퀴 형태로 변해 빠른 주행이 가능하고 비포장 험로에서는 돌기가 있는 큰 지름의 바퀴로 변하는 방식이다. 바퀴 크기는 45cm에서 펼치면 80cm까지 커진다. 조 교수팀은 타이어 골격에 쓰이는 나일론 소재를 특수 처리한 직물을 접히는 부분에 적용해 차량의 하중을 견디게 했다.

조 교수는 “동체를 접고 펴며 모양이 변하는 바퀴는 평소에는 작은 바퀴로 부드럽게 움직이다가 문턱을 넘을 땐 변하는 등 지금까지 바퀴가 필요했지만 쓰일 수 없던 곳에서 활용될 것”이라며 “달이나 화성 탐사차량에도 적용하면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기동성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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