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광풍 노리는 ‘검은손’… 시세조종-해킹-리딩방 사기 피해 속출

박희창 기자 ,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4-22 03:00 수정 2021-04-22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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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계좌로 시세조종 나설 여지… 거래 안했는데 돈 빠져나가기도
리딩방선 특정 코인 찍어 투자 유혹… 금융상품 포함 안돼 구제 힘들어
與 “피해 확산 우려… 특단 대책”
청년들은 “사다리 걷어차나” 반발


그래픽 김충민 기자
A 씨는 요즘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매도한 적도 없는데 가상화폐 계좌에서 3000만 원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투자자 B 씨의 1억 원이 넘는 가상화폐도 하룻밤 새 사라졌다. 거래소 측은 “서버 등을 점검했지만 해킹이나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다”고 발뺌을 했다.

C 씨는 최근 화장품을 사면서 ‘○○코인’을 받았다. 회사 측은 “현금으로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사면 일정 비율만큼 코인을 준다. 자체 개발한 가상화폐인데 상장하면 대박 날 것”이라고 유혹했다. 하지만 구입한 화장품은 시중 판매가보다 비쌌고 코인은 상장 기약도 없어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3년 만에 불어닥친 ‘코인 광풍’에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이들을 노리는 ‘꾼’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시장 과열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자 여당도 뒤늦게 강도 높은 대책을 예고하고 나섰다.

○ 석 달 새 미확인 계좌 12만 개 생겨

21일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 새로 개설된 계좌 가운데 실명 등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미확인 계좌’는 12만1555개에 이른다. 1분기에 한 번이라도 거래를 한 미확인 계좌는 145만9137개나 된다. 그만큼 시세 조종이나 자금세탁, 다단계 사기 등 불법 세력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가상화폐 시세 조종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한 유명 BJ가 올 2월 아프리카TV에서 가상화폐에 수억 원을 투자했다고 공개하자 누리꾼들이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해당 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얼마든지 시세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주식 리딩방’처럼 카카오톡 등을 통해 특정 코인의 매매를 부추기는 ‘코인 리딩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이날 ‘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주의보’를 발령했다. 최한철 민생사법경찰단 수사1반장은 “가상화폐는 피해를 입더라도 사법기관을 통해 구제받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정부도 10개 부처 합동으로 불법 행위에 대한 특별 단속에 나섰지만 투자자 보호나 피해 보상을 위한 장치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 여당 뒤늦게 “고강도 대책 세울 것”

4대 거래소의 1분기 거래 금액은 1486조2270억 원에 이른다. 코인 광풍이 거셌던 2018년 연간 거래 규모(936조3681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가상화폐 거래가 급증하고 이상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정치권도 대책 논의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각종 불법 행위, 사기 피해가 확산되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는 지도부의 공감대가 있었다.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특단의 대책이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불법 거래를 처벌하거나 가상화폐를 규제하려면 가상화폐가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금융투자 상품에 포함돼야 하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올해 가상화폐 신규 투자자(249만5289명) 가운데 20, 30대가 63.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청년들의 반발을 의식해 고강도 규제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2018년 “거래소를 폐지할 수 있다”며 강하게 압박하자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벌써부터 “정부가 청년들의 마지막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한다” “급락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다시 급등하니 세금을 내라 하고 규제도 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미국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증시 상장을 허용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3년 전과 비슷하다. 투자자 보호 대책을 세우고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박희창 ramblas@donga.com·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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