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탈출구 찾는 청년들 ‘영끌 베팅’… 가상화폐 1분기 신규투자 63%가 2030

김자현 기자 , 이상환 기자

입력 2021-04-21 03:00:00 수정 2021-04-21 13: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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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식투자 80%가 작년 시작
“월급만 모아선 벼락거지 될판”… 가상화폐 한방 유혹에 빠져





“월급만 차곡차곡 모았다가는 어차피 ‘벼락거지’ 될 텐데 차라리 큰 거 한 방 노리는 게 낫죠.”

회사원 정모 씨(29)는 지난달 초 가상화폐 투자에 입문했다. 가상화폐로 수억 원을 벌었다는 주변 얘기에 손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따라 가격이 싼 ‘잡코인’을 사고팔며 한 달도 안 돼 30% 넘는 수익을 올렸다. 자신감이 붙은 정 씨는 최근 주식에 넣었던 3000만 원을 모두 빼내 가상화폐에 ‘몰빵’했다. 가상화폐 시장이 마감 없이 24시간 운영되는 탓에 정 씨는 새벽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시로 일어나 투자창을 확인한다. 정 씨는 “가상화폐가 잠을 뺏어갔지만 집을 살 수 있다는 꿈은 안겨줬다”고 했다.


올해 1분기(1∼3월) 가상화폐에 처음 뛰어든 투자자 10명 중 6명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화폐 과열이 심해지는 가운데 취업난과 생활고로 탈출구가 막힌 청년들이 초위험 자산에 ‘베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동아일보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을 통해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투자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 1분기 신규 계좌를 개설해 투자를 시작한 사람은 249만5289명(중복 포함)이었다.

이 중 20, 30대 신규 투자자가 158만4814명으로 63.5%를 차지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만 19세도 3만6326명(1.5%)이었다. 4대 거래소의 연령별 투자자 실태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또 신한은행이 만 20∼64세 취업자 1만 명을 설문한 결과 주식 투자자 중 20대는 85.5%가, 30대는 82.7%가 지난해 주식 계좌를 새로 만들거나 신규 종목을 매수한 ‘주린이’(주식+어린이)로 조사됐다. 하지만 최근 증시가 주춤한 사이 20, 30대 주식 투자자의 상당수가 가상화폐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사태가 청년 신용불량자를 대거 양산했던 것처럼 가상화폐 버블(거품)이 붕괴되면 한 방을 노리고 투자에 뛰어든 청년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30 ‘코린이’ 석달새 158만명 급증… 재택 수업중에도 코인창만 들여다봐
“이름이 예쁠 것, 가격이 1000원 아래일 것, 하루 20% 이상 오른 적이 없을 것….”

대학교 3학년생인 이모 씨(25)가 소개한 가상화폐 투자법이다. 올해 초 100만 원으로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한 이 씨는 400%의 수익률을 맛본 뒤 ‘코인 세계’에 빠져 살고 있다. 집에서 비대면 강의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가상화폐 관련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고 코인을 사고판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것도 포기했다.

“처음엔 왜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는지 공부했어요. 그런데 이유를 찾는 사이 가격이 더 뛰더라고요. 투자 분석할 시간에,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가상화폐 거래를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이득입니다.”

3년 만에 ‘코인 광풍’이 다시 불면서 불나방처럼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드는 2030세대가 급증하는 실태가 통계로 확인됐다. 취업난, 생활고, 사회적 고립의 3중고(苦)에 시달리며 ‘코로나 3고 세대’로 전락한 청년층이 가상화폐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20, 30대 코린이 158만 명 “한 방 노린다”


20일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이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가상화폐 거래를 한 번 이상이라도 한 20, 30대는 233만5977명(중복 포함)이었다.

이 중 1분기에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를 시작한 20대(81만6039명)와 30대(76만8775명)는 158만4814명이었다. 20, 30대 가상화폐 투자자 10명 중 7명이 올 들어 투자에 뛰어든 ‘코린이’(코인+어린이)인 것이다. 코린이 비중은 연령이 낮을수록 높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성인이 된 10대 투자자(만 19세)는 97.0%(3만6326명)가 신규 투자자였다. 이어 20대(73.8%), 30대(62.5%) 순으로 코린이가 많았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김모 씨(19)도 3월 생일이 지나자마자 가상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만들었다. 가상화폐로 돈을 번 선배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도 씀씀이가 커진 게 부러웠기 때문이다. 60만 원을 투자해 2배로 불린 김 씨는 가족들 돈을 빌리거나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가상화폐 시장은 가격 제한폭이 없고 365일 운영된다. 적은 돈으로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불나방 투자자들이 몰려들기 좋은 구조다. 일례로 세타퓨엘, 쎄타토큰, 앵커 같은 가상화폐는 최근 1년 수익률이 1만∼1만7000%에 이른다. 다들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데 나만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도 청년들의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투자 과열 분위기에 1분기 4대 거래소의 거래 규모(1486조2770억 원)는 지난해 연간 거래액(357조3449억 원)의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1분기 코스피 거래액(1206조2137억 원)도 앞질렀다. 가상화폐를 사기 위해 계좌에 넣어두는 예치금도 지난해 말 1조7537억 원에서 3월 말 6조4864억 원으로 급증했다.

○ 30분 만에 1075배로 폭등, 한 달에 125번 거래
하지만 시장 곳곳에선 이상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20일 빗썸에 상장한 ‘아로와나토큰’은 오후 2시 반 50원에 거래를 시작해 오후 3시경 5만3800원으로 치솟았다. 불과 30분 만에 10만7500% 폭등한 것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 당일 급등하는 가상화폐가 있지만 10만 %라는 상승률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 프로그래머들이 비트코인 급등을 풍자하기 위해 장난처럼 만든 ‘도지코인’은 최근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투자할 거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일주일 새 300% 넘게 급등했다. 가상화폐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도 이달 13일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서 8000만 원을 돌파했다가 14% 넘게 급락한 상태다.

가상화폐 가격 변동 폭이 이처럼 크다 보니 단타로 매매하는 투기 성향도 심해지고 있다. 1분기 4대 거래소의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횟수는 125.8회였다. 주말, 공휴일 가리지 않고 하루 4차례 이상 가상화폐를 사고판 셈이다. 한 대형 증권사의 주식 투자자 1인당 월평균 거래횟수가 25.8회인 것과 비교하면 가상화폐 투자자의 초단타 성향이 5배 수준으로 높았다.

2월 초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한 이모 씨(20·여)가 갈아탄 가상화폐도 한 달 새 20개가 넘는다. 이 씨는 원룸 보증금으로 마련해둔 300만 원으로 부모님 몰래 투자했지만 수익은커녕 원금을 100만 원이나 까먹었다. 원룸 입주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하루 12시간씩 단타 매매를 하고 있다.

황수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생 자산시장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산을 사고파는 건 도박에 가깝다. 투자 광풍 뒤엔 버블 붕괴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실명 미확인 ‘수상한 계좌’ 145만개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2030세대의 주요 투자처로 알려져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관련 서적도 인기를 얻고있다.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가상화폐 계좌 10개 중 3개는 투자자 실명을 확인할 수 없는 미확인 계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이용한 시세 조종이나 자금 세탁, 투자 사기 등 불법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투자자 실명 등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미확인 계좌는 145만9137개로 집계됐다. 이는 올 1분기(1∼3월)에 거래를 한 번 이상이라도 한 가상화폐 전체 계좌의 28.5%에 이르는 규모다.

현재 4대 대형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원화로 입출금하려면 실명 계좌가 있어야 하지만 중소형 거래소에선 실명 계좌가 없어도 된다. 실명 계좌 없이도 거래가 가능한 중소형 거래소는 100여 개로 추산된다.

약 146만 개의 미확인 계좌는 이런 중소형 거래소에서 실명 미확인 계좌를 만든 뒤 4대 거래소로 가상화폐를 옮겨 투자하는 사람들이나 원화 거래가 필요 없는 일부 해외 투자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실명 미확인 계좌를 통해 시세 조종 세력이 끼어들 여지가 높다는 점이다. 1분기 미확인 계좌의 평균 거래횟수는 520회로, 전체 가상화폐 계좌의 거래 횟수(377회)보다 훨씬 많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계좌에서 매매가 이렇게 많다는 건 시세 조종 의심이 가는 정황”이라고 했다.

다만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는 9월 말까지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이 가능한 계좌를 받아 신고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실명 계좌를 갖추기 힘든 중소형 거래소 상당수가 문을 닫으면서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이 검증이 어려운 중소형 거래소에 대해선 금융사고를 우려해 실명 계좌를 내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김자현 zion37@donga.com·이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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