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청년들 PC엔 자소서 파일 가득”… 소리없이 느는 고독사

세종=구특교 기자 , 남건우 기자

입력 2021-04-20 03:00:00 수정 2021-04-20 16: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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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苦세대]〈하〉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청년들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청년들… 홀로 떠난 ‘고독사’ 작년 97명
A 씨 집에서 발견된 책 글귀 ‘남에게 애쓰느라 나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냉담한 현실에서 어른으로 살기 위한 방법’
지난달 말 지방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성 A 씨가 숨진 지 3일가량 지난 뒤 발견됐다. 그가 떠난 책상엔 약봉지들이 가득했다. 현관 앞에는 6병의 빈 술병도 놓여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홀로 먹다 남긴 듯한 치킨 봉지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남에게 애쓰느라 나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냉담한 현실에서 어른으로 살기 위한 방법’….

쓸쓸히 세상을 등진 젊은이의 집에서 시신과 유품을 정리한 특수용역 청소업체 관계자 B 씨는 그날 책장에 꽂힌 책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기자에게 “옷장에 정장을 잘 정리해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들을 보니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업난과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자리 시장에서 연거푸 탈락하고 작은 성공의 경험조차 얻지 못한 청년들은 무기력과 우울감을 호소한다.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지난달 20∼29세 청년 6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평소 우울감이나 좌절감을 겪는다’고 응답한 이들이 10명 중 8명꼴이었다. 매일 우울하거나 좌절감을 겪는다는 이들도 16.3%였다. 청년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난’(51.3%)이었다.

일부 청년은 깊은 좌절감에 빠져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다가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점점 고립돼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39세 이하의 무연고 사망자는 97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은 사망 후 연고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연고와 무관하게 홀로 사망하는 고독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시민단체들은 추산한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청년정책센터장은 “청년들은 네트워크가 약하다 보니 힘들어도 다른 이에게 의지하거나 돈을 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고통-저임금에 절망… 청년 83% “평소 우울감 좌절감”
“고독사 집엔 먹다남은 배달 음식-최저임금 수준 급여명세서만…”
《지난해 11월 지방의 한 원룸에서 20대 후반 남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의 책상에는 수개월 치의 급여명세서가 흩어져 있었다. 명세서에 적힌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00여만 원. 그는 한 연구소의 단기 인턴으로 근무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청년의 집을 치운 특수청소업체 ‘제이콥’의 김효진 대표는 “A 씨처럼 스펙은 높은데 취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스펙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다 혼자 생을 마감하는 청년들이 있다”며 “최저임금만으로 방값과 식사비, 공과금, 통신비, 교통비까지 다 내야 하니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청년 고독사가 소리 없이 늘고 있다. 고독사라고 하면 주로 노년층을 떠올리기 쉽지만 청년 고독사의 심각성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상처받고 세상과 단절하는 ‘은둔형 외톨이’까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느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울타리’ 역할을 하는 학교마저 문을 닫으면서 청년들의 ‘마음 방역’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 청년들의 흔적, ‘취업’ ‘저임금’ 고통 호소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청년들은 우울이나 좌절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지난달 20∼29세 청년 6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8명꼴인 501명이 ‘평소 우울감이나 좌절감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들 중 51.3%는 ‘취업난’을, 34.9%는 ‘주거 등 현재 처지 비관’을 이유로 꼽았다.

홀로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고독사하는 청년들도 있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20대 자살률은 전년 대비 9.6% 증가했다. 전 연령대 중 증가율이 가장 높다. 특수용역 청소회사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위기로 취업난과 생활고를 겪는 청년들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고 증언하지만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정확한 실태와 통계는 사실상 전무하다. 길해용 특수청소업체 ‘스위퍼스’ 대표는 “최근 들어 청년 고독사 현장의 청소 의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콥의 김 대표는 “청년들의 집 80% 이상은 텅 빈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배달 음식이 발견된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자기소개서 파일이 가득하다”고 했다.

지난해 숨진 지 6개월가량 지나 발견된 20대 여성 B 씨도 마찬가지였다. B 씨가 남긴 글에는 광고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정작 열악한 인쇄업체에서 일하며 생긴 열패감, 낮은 급여로 인한 생활고가 담겨 있었다. 청년들이 남긴 흔적에선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는 사회의 지나친 기대와 이로 인한 압박감도 묻어난다. 지난해 9월 홀로 숨진 채 발견된 청년 C 씨는 ‘계속 취업에 미끄러지니 힘들고 미안하다’ ‘부모님이 해주신 것에 비하면 이룰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 경쟁과 성공 강요하는 세상, 단절 택한 ‘은둔형 외톨이’
치열한 경쟁과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의 강압적 분위기는 청년들을 ‘은둔형 외톨이’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달 23일 기자가 찾은 서울 성북구의 청년심리치료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 숙소에서 만난 청년들은 경쟁과 비교를 요구하는 사회의 강압적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유승규 씨(28)는 5년 동안 집에서만 생활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9년부터 K2에 머물고 있다. 유 씨는 “가부장적인 집안 환경과 ‘(동영상) 크리에이터’라는 꿈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은둔 생활을 하게 됐다”며 “여기 온 사람들은 학벌도 좋고 멀쩡하다. 사회가 청년 문제를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19∼39세 은둔형 외톨이는 13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하다 보니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자체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조례를 발의하고 있지만 은둔형 외톨이의 특수성을 고려한 체계적인 지원책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보다 앞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비화한 일본에는 15∼39세 청년 히키코모리가 54만1000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에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75개를 운영 중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아래 은둔형 외톨이 전문 상담, 교육, 보건, 취업과 연계된 활동들이 단계별로 진행된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loneliness) 담당 장관’을 신설하고 국가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 “청년 문제, 일자리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아야”

서울시 공영 장례를 맡고 있는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는 “보건복지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청년 고독사와 관련한 업무를 떠넘기니 제대로 된 통계나 정책이 없다”며 “고독사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 부처에 담당 부서를 지정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청년 문제를 단순히 ‘일자리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기웅 청년재단 매니저는 “정부에서는 청년 문제가 취업난이 해소되면 해결될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을 보듬어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결속력이 다른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점을 고려해 청년들의 유대감을 키워주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고용센터는 실업급여만 주는 축소된 기능만 수행하지만 독일은 ‘인생 상담’까지 해준다”며 “청년과 노인 등 연령층 구분 없이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독일의 ‘세대 간 통합센터’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요리-자전거 등 소소한 성취로 자신감 회복”
우울증-무력감 탈출법 찾는 청년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등교도 거부한 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온 함모 씨(36)는 지난해 10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자신처럼 스스로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청년심리치유 관련 사회적 기업에서 심리치료를 받던 함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그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건 ‘작은 일상’의 경험이었다. 요리를 못 하지만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아 직접 요리하고, 사람들과 함께 장을 보러 다니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파두부밥을 하거나 김치찌개를 함께 사는 이들과 만들어 나누어 먹으면서 굳게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걸 느꼈다.

함 씨는 “처음 공동생활을 할 때엔 사회 공포증을 떨치지 못했다. 밥을 먹거나 요리하는 사소한 것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며 “여전히 숙소 밖으로 나가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우울증이나 무력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당장 일자리를 구하거나 현실을 바꾸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 대신 함 씨처럼 스스로 내면의 안정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청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거나 ‘요리하기’, ‘자전거 배우기’ 등의 소소한 목표를 설정해 성취의 경험을 쌓아가는 식이다.

역시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로 부르는 권모 씨(22)는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 천천히 발을 내디뎌 멈췄다 섰다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며 받은 상처들이 기억 뒤로 사라지는 것 같다. 권 씨는 “처음엔 자전거를 아예 못 탔는데 3개월 연습하니까 많이 늘었다”며 “빨리 배워서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들을 자전거를 타고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종=구특교 kootg@donga.com·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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