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이번엔 될까… 보험업계-의료계 또 충돌

신지환 기자

입력 2021-04-14 03:00 수정 2021-04-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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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0만명 가입한 ‘제2의 건강보험’… 절차 복잡해 미청구 비율 50% 육박
김병욱 의원, 보험업법 개정안 발의… 지난해 3차례 발의 불구 합의 못해
보험업계 “소비자 불편 해소할 기회”… 의료계 “환자 정보 유출 우려” 반대



3년 전 골프를 치다가 허리를 다친 직장인 김모 씨(49)는 한 달 가까이 통원 치료를 받으며 진료비로 15만 원을 썼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김 씨는 보험금 청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청구 가능 기간을 넘겨버렸다. 김 씨는 “회사 일로 바빠 진단서, 진료비 영수증 같은 서류를 챙겨 보험사에 보낼 틈이 없었다. 청구 절차가 복잡해 한 번도 실손보험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34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도 건강보험처럼 보험금 청구 절차를 자동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 반발 등에 부딪혀 수년째 제자리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작업이 이달 국회에서 속도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 “청구 절차 번거로워 실손보험금 안 받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기관의 전자증빙자료 발급을 핵심으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12일 대표 발의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4번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이다. 지난해만 관련 법안이 3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4개 법안 모두 병의원 등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전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전산화해 보험 가입자들의 불편을 줄이려는 취지다.

실제로 청구 절차가 번거로워 보험금을 제대로 받아가지 않는 소비자가 많다.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원·입원 치료를 받은 실손보험 가입자 가운데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사람은 절반 가까이(47.5%) 됐다.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로 ‘병원에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4.0%), ‘서류 전송이 귀찮아서’(30.7%) 등을 많이 꼽았다.

일부 대형병원이 2018년부터 청구 간소화를 위해 키오스크 등 전산망 연동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이를 이용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가입자는 전체의 0.002%(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대다수 가입자가 진단비, 영수증 등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팩스, 설계사, 방문 등을 통해 보험사에 직접 제출하고 있다.


○ 정보 유출 등 두고 보험-의료계 여전히 대립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로 공론화된 이후 2015년부터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관련 시스템 마련에 나섰지만 의료계 반대에 부닥쳐 번번이 무산됐다.

보험업계는 이번 4번째 법안 발의가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할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12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청구 관련 종이서류만 연간 4억 건 이상이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전산화 청구 방식은 소비자와 의료기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지규열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 등이 환자의 개인정보를 전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정보 유출 시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정부 부처는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의료계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이동엽 금융위 보험과장은 “청구 간소화는 병원 업무를 클릭 한 번으로 간소화하자는 것”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중계기관이 의료정보를 남용할 수 없도록 처벌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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