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세기 전 김수로와 허황옥의 사랑… 역사 오페라 새 가능성을 열다

김해=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4-12 03:00 수정 2021-04-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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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창작오페라 ‘허왕후’
상상력으로 흥미-대중성 확보
출연진 88%가 지역 예술인


오페라 ‘허왕후’ 4막. 시녀 디얀시를 고향에 묻어주러 떠났던 허황옥(소프라노 김성은)이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돌아오자 수로왕(테너 박성규)이 배에 올라 함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김해문화재단 제공

스무 세기 전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사랑이 오페라로 되살아났다. 김해문화재단(대표이사 윤정국)이 8∼10일 경남 김해시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공연한 오페라 ‘허왕후’는 사랑과 음모가 어울려 흥미를 견인하며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사 오페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숙영의 대본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허황옥의 상륙 이전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립해 두 주인공의 사랑에 설득력 있는 옷을 입혔다. 허황옥은 가락국과 아유타국의 문명 교류에 핵심 역할을 하는 호기심 많은 인물이자 김수로왕의 즉위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무대는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상부와 검(劍)을 형상화한 수직의 조형물을 기본으로 각 장면에 특화된 배경이 더해져 관객이 상상력을 열어갈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이런 배경 위에 펼쳐진 작곡가 김주원의 음악은 다중양식(多重樣式)적이라고 할 만했다. 장면마다 유럽의 왈츠, 중남미의 하바네라, 20세기 캅카스 지역 발레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음악적 이디엄이 녹아들었다. 허황옥의 도래가 문명 교류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야기인 만큼 다른 역사 소재에 비해 부담이 적은 선택이다. 가야금을 연상시킬 음악적 소재가 등장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우륵의 가야금은 김수로왕보다 5세기 뒤에 등장하지만 2막 2장 허황옥의 처소 장면에서 가야금을 떠올릴 선율이 들렸으면 맞춤했을 것이다.

중창 장면들은 화음을 이루는 부분보다 번갈아 부르는 대창(對唱)의 역할이 컸다. 이국적 색채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타악기 글로켄슈필의 비중이 과도하게 들린 반면 금관의 역할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8, 10일 허황옥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김성은은 사랑에 설레는 서정성과 음모를 깨부수는 강력함, 새 나라를 열어가는 환희 등을 공명점의 적절한 변화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김수로왕 역을 맡은 테너 박성규의 온화한 노래와 석탈해를 연기한 테너 서필의 뚜렷한 음색이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시녀 디얀시 역의 소프라노 김민형은 배신의 아픔을 서정적인 음색으로 호소했다. 이진아시를 연기한 바리톤 박정민, 신귀간 역을 맡은 베이스 박준혁의 압도적인 성량도 인상적이었다.

출연자들의 동선은 자연스러웠고 연기에 들인 공도 역력했다. 석탈해의 음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나 디얀시의 희생 장면에서는 구간(九干·가야 건국 주체가 된 9명의 씨족장)들이 한층 뚜렷하게 놀라움과 실망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2막 1장 뒤 휴식시간이 진행되고 2막 2장으로 이어진 점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각각 ‘남성들의 장’과 ‘여성들의 장’으로 공통점도 찾기 힘든 만큼 막 구분을 재조정할 만했다.

이번 공연은 출연진의 88%가 지역 예술인으로 채워졌다고 김해문화재단은 밝혔다. 반주부는 이번 연주를 위해 조직한 ghcf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장윤성이 지휘했다. 1월에 연습을 시작해 호흡을 맞춘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한층 완숙하게 발전할 합주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해=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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