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조개 생산 ‘산업의 쌀’ 반도체, 왜 부족할까

곽도영 기자

입력 2021-04-10 03:00:00 수정 2021-04-10 21: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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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시장 회복 예상 못하고 車반도체 물량 줄여


《반도체 부족으로 전 세계 자동차 공장이 멈춰서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테슬라 북미 공장이 멈춰선 데 이어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현대자동차도 울산1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대표 차종인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까지 12, 13일 가동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는 모양새다. 자동차 외에도 아이폰 생산량이 10% 줄었고 글로벌 1위 가전 기업 월풀은 중국 생산량의 25%에 차질이 생겼다고 밝혔다. 반도체는 각종 첨단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으로 ‘산업의 쌀’로 불린다. 연간 약 1조 개씩 생산되는 반도체는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첨단 무기에 이르기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초유의 반도체 부족 사태가 일어난 배경을 짚어봤다.》

“지금 팹(Fab·반도체 생산 공장)이 꽉 찼어요. 더 넣을 데가 없어요. 전시 상황입니다.”


8일 국내 한 중견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반도체 팹 짓는 게 무슨 식당 늘리는 것처럼 프라이팬 사다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다들 여력이 없으니 최소 내년까지는 지금 같은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품귀 현상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처음엔 차량용 반도체에서부터 번져나갔다. 그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인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에서 차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실 이들 차량용 반도체 업체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등에 밀려 45nm(나노미터) 이상 중·저사양 반도체와 센서, 다이오드 시장을 나눠 가졌다. 차량용 반도체는 이에 해당한다.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국내에도 DB하이텍, 온세미컨덕터코리아, 삼성전자(기흥사업장)가 이런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1조 개씩 생산되는 반도체가 왜 부족해진 것일까.

원인① 수요 예측의 실패

지난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저사양 반도체를 만드는 업체들은 생산 라인을 대거 바꿨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닐 일이 없어질 거란 전망하에 산업계가 완성차 수요 전망을 낮춰 잡았기 때문이다. 때맞춰 ‘언택트(비대면)’ 바람이 불면서 모바일, PC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업계의 수요는 폭등하고 있었다. 전력반도체나 센서 등을 기존 주력인 차량용에서 IT 제품용으로 바꿔 생산하기 시작했다.

A반도체사 관계자는 “전력반도체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면 스마트폰용이 되는 거고, 차량에 들어가면 차량용이 되는 것”이라며 “라인 자체가 크게 다르진 않고 세부적인 조건이나 품질 테스트 방식 등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는 50∼60도 선에서 열처리를 한다면 차량의 경우엔 150∼200도에서 열처리를 한다. 일부 장비들을 바꾸거나 새로 들이면 생산 품목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확산 고점(피크)을 넘으며 글로벌 차량 수요가 회복되면서 불거졌다. 완성차 업체마다 반도체 재고가 떨어져갔지만 NXP를 비롯한 주요 반도체 회사는 이미 폭증한 IT 업계의 수요를 맞추느라 생산 라인이 꽉 찬 상태였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종별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우리는 차종별로 최대 6개월 치까지 비교적 보수적으로 재고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3개월 치 밑으로 갖고 있던 완성차 업체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선 최소 내년까진 상황의 획기적인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B반도체사 관계자는 “팹이 꽉 찬 상태에서 현재 돌리고 있는 IT 물량을 빼고 차량 물량을 넣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받아놓은 주문을 우선 처리해야 하고 수년 간의 애프터서비스(AS) 기간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인②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인한 ‘패닉바잉’



공급 부족은 중·저사양급 반도체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넘치는 IT 제품 수요로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지만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란 변수가 떠올랐다.

지난해 9월 당시 중국 1위 스마트폰 기업이자 대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었던 화웨이가 대만으로 전세기를 띄웠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우방국들과 함께 화웨이 대상 반도체 수출 금지를 선포하자 재고 확보에 나선 것이었다.

올해 들어선 조 바이든 정부도 중국에 대한 반도체 견제의 시그널이 여전하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도 반도체를 국가 핵심 전략 요소로 설정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요 기업이 재고 축적에 나서며 수요가 뻥튀기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 반도체 공장’인 대만 TSMC 마크 리우 회장도 최근 이 문제를 직접 짚었다. 10nm 이하 시스템반도체 기준 전 세계 92%의 물량이 대만에서 생산된다. 리우 회장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대만반도체산업협회 행사에서 “반도체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공급 부족을 우려한 기업들의 사재기”라며 “반도체 수요가 실제 필요한 것보다 과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원인③ 자연재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초부터 반도체 사업장과 생산기지가 있는 지역에 자연재해가 잇따르며 반도체 공급은 더욱 차질을 빚었다.

2월엔 북극발(發) 이상한파가 들이닥쳐 미국 텍사스의 NXP, 인피니온, 삼성전자 공장이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3월엔 일본 르네사스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설비 일부가 피해를 입었다. 같은 달 대만에서는 가뭄이 문제다. 가뭄이 지속될 경우 TSMC 생산시설에 여파가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 번 웨이퍼(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얇은 원판) 작업에 들어가면 수 개월간의 미세공정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이어져야 하는 게 반도체 공장의 특성”이라며 “정전이나 화재 등이 발생하면 공장이 실제 멈추는 시간은 짧지만 그로 인해 사실상 앞뒤로 수 개월간의 생산 공정이 무효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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