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인세 인하 경쟁 멈춰야”… 한국 등 G20에 증세 동참 압박

뉴욕=유재동 특파원 , 세종=송충현 기자 , 신아형 기자

입력 2021-04-07 03:00 수정 2021-04-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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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 “G20과 법인세율 하한선 논의”…기업 해외이탈 차단-경기부양 시동
韓정부 “아직 공식 논의 요청 없어”…외신 “美, 불참 국가 세금폭탄 검토”
獨 “훌륭한 진전” IMF도 환영…7일 열릴 G20 재무장관 회의 촉각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이 각국의 법인세 인하 출혈 경쟁을 멈춰야 한다면서 주요국들과 법인세율 하한선을 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집행한 데 따른 재정 손실을 메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이 정책 공조의 대상으로 삼은 국가는 주요 20개국(G20)으로 한국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 요청이 들어온 건 없다”면서도 7일 예정된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은 미국의 법인세율 하한선 추진에 대해 “훌륭한 진전”이라며 환영을 뜻을 나타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이 추진하려는 방안을 반겼다고 IMF 소속 수석 경제학자 기타 고피나트가 밝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5일(현지 시간)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 주최 행사의 화상 연설을 통해 “30년간 법인세 바닥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며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요국들이 다국적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세율을 앞다퉈 낮춤으로써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옐런 장관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G20의 주요국들과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경쟁력이란 각국 정부가 필수 공공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세수를 위한 안정적인 조세 제도를 갖는 것을 말한다”며 “세금 경쟁과 법인세 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끝내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21%인 미국의 최고 법인세율을 28%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5%에서 21%로 낮춘 세율을 일부나마 다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한 세수는 최근 발표된 2조25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 기업들의 해외 소득에 대한 최저 세율도 10.5%에서 21%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내 법인세 인상을 피해 수익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강제성이 없는 글로벌 조세 공조가 실제로 실행되고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전반적인 증세 방안은 기업들의 해외 탈출을 유도하고 해외 시장에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깎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정책 도입을 압박하는, 일종의 ‘조세 신사협정’을 체결해 법인세 인상의 부작용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통해 여러 나라와 법인세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논의를 물밑에서 진행해 왔다. 이날 옐런 장관의 발언은 법인세 하한선 설정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강하게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OECD는 현재 법인세 하한선으로 12% 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나서서 주도한다 해도 각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조세제도를 강제적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렵게나마 글로벌 협약에 성공한다 해도 정치·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폐기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세법은 법률로 조정해야 할 문제라 정부 차원의 검토는 물론이고 국회 논의도 필요하다”며 “나라마다 산업 환경과 처한 상황이 모두 달라 결정하기 쉬운 주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AP통신은 이날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조세 정책에는 법인세 하한선 설정을 하지 않는 나라의 기업은 미국 내 지사에 무겁게 세금을 물림으로써 처벌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국제무역에서 상호 간에 보복 관세를 매기는 것처럼 외국 기업에 징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 공조까지 필요로 하는 대규모 증세 방안을 몰아붙이자 미국 내에서는 이 문제가 큰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일으키고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데다 자국 기업들에는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요인이 된다는 게 공화당의 주장이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번 증세 방안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일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옐런 장관이 법인세 관련 발언을 꺼낼 가능성도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세종=송충현 / 신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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