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동일]‘단체급식 일감 개방’ 행사에 기업CEO들 불러세운 공정위

서동일 산업1부 기자

입력 2021-04-07 03:00 수정 2021-04-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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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1부 기자
“구내식당 사업자 교체에 최고경영자(CEO)들이 동원될 일인가요. 글로벌 시장에서 살얼음판을 걸으며 생존을 건 경쟁을 해야 하는 CEO들을 불러 모아 급식시장 개방을 논의하는 것, 솔직히 이해가 안 갑니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8개 대기업 집단과 함께한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두고 한 재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 장재훈 현대차 대표, 권영수 LG 부회장 등 각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직접 참석했다. 대기업 계열사 혹은 친족기업이 독점해 왔던 국내 대기업 사업장의 급식 시장을 중소·중견기업에 개방하는 자리였다.

대기업 주력 계열사 CEO를 이렇게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건 공정위 같은 힘 있는 정부기관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 기업 자율에 맡겼다면 풀어야 할 경영과제가 산적한 CEO들이 참석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 구내식당 실태를 조사하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2017년 9월 신설된 한시 조직이다. 2019년 9월 한 차례 연장됐고, 올해 9월 전 다시 존폐 기로에 선다. 일부에서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의 ‘막판 실적 내기’에 기업 최고경영진이 병풍처럼 동원된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과거 일부 대기업이 구내식당 일감을 오너 친족기업들에 수의계약으로 주면서 불공정 논란을 샀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이 공정 경쟁에 앞장서야 한다는 공정위의 정책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직원 밥 먹이는 것까지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불만이 왜 나오는지 정부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양한 메뉴가 무료로 제공된다. ‘밥이 곧 복지’라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주차장 면적만 웬만한 축구장 크기를 넘을 만큼 규모가 커 외부 식당 이용이 힘들다.

이날 선포식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직원들이) 맛있는 음식을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경쟁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계열사에 주방을 맡겼던 이유는 경쟁이 싫어서가 아니라 맛과 가격, 위생 수준을 가장 잘 맞췄기 때문이었다. 대량 급식사업 경험이 없는 중소업체들이 질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틈만 나면 행사에 CEO를 부르는 정부에 휘둘리는 기업들은 이제 급식까지 규제받는 처지가 됐다.

서동일 산업1부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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