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특교]美-中은 아낌없는 ‘반도체 투자’… 한국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

구특교 경제부 기자

입력 2021-04-07 03:00 수정 2021-04-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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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특교 경제부 기자
“‘반도체는 기업이 하는데 국가가 왜 지원을 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최근 만난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에 대해 서운한 게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돈 많은’ 대기업에 굳이 정부가 나서 예산 지원을 해야 하느냐는 게 정치권과 예산당국 등의 분위기라는 설명이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하는 데에 대한 반발이 크다는 얘기다. ‘반도체 최강국’이라는 명성에 젖어 “기업들이 알아서 잘하는데 굳이 정부까지 나서야 하느냐”는 인식이 굳어질까봐 걱정이라는 하소연이었다.

기업들의 엄살인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8.4%로 미국에 이어 2위다.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70%를 비메모리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강국이라고 으스댈 일은 아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중국, 대만, 유럽연합(EU) 등이 ‘미래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기업 대 기업’에서 ‘국가 대 국가’로 바뀌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56조 원을, 중국은 2025년까지 170조 원을 반도체 시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한국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10년간 2조5000억 원을 투입하는 정도에 그쳤다.

시장에서 촌각을 다투는 경쟁을 하는 기업들이 놓칠 수 있는 중장기 전략과 R&D 투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없다면 ‘반도체’라는 국가 경쟁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반도체 인력 양성은 최소 5∼10년을 바라보는 장기 사업이다. 정부가 긴 안목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는 “반도체 시장이 고도화돼 다수 인력이 집단 지성을 발휘해야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상황인데 대학 연구 개발비나 인력 양성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선언하고 백악관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까지 소집했다. 전운이 감도는 ‘반도체 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과 정부 관리들은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지 산업계와 학계는 묻고 있다.

구특교 경제부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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