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대전’ 롯데-신세계, 유통 곳곳서 한판 격돌

사지원 기자

입력 2021-04-06 03:00 수정 2021-04-06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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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마케팅은 꼭 이긴다” 선공… 롯데도 “원정서 쓰윽 이기고” 맞불
오프라인 빅2 존재감 부각 계기… 롯데마트-이마트 매출 늘며 ‘윈윈’
“이베이코리아 우리가 먹겠다”
M&A 시장서도 본격 승부 예고


“야구와 본업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롯데를 보면서 야구단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30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서 라이벌 그룹인 롯데를 공개 ‘저격’했다.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바로 다음 날, 롯데는 반격했다. 통합온라인몰 ‘롯데온’ 배너에 롯데 자이언츠 관련 이벤트를 알리며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란 문구를 넣었다. ‘쓰윽’이 신세계 온라인몰 SSG닷컴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유통 맞수’ 롯데와 신세계가 야구판에서 다시 맞붙으면서 이들의 오랜 라이벌 구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격히 성장한 이커머스 업체들의 위세에 움츠러들었던 오프라인 유통 빅2가 야구를 통한 ‘맞수 마케팅’으로 존재감 키우기에 나섰다.

○ 전례 없는 ‘라이벌 마케팅’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이 롯데 자이언츠의 홈런을 기원하며 홈페이지에 게시한 배너. 롯데온 제공
최근 롯데와 신세계 모두 야구 관련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게임에선 져도 마케팅은 꼭 롯데를 이긴다”고 한 정 부회장의 공언대로 이마트와 SSG닷컴은 개막전 전후로 대규모 할인행사 ‘랜더스데이’ ‘랜더스위크’를 기획했다. 롯데도 신세계를 겨냥한 ‘야구도 유통도 한판 붙자!’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4월 한 달 대규모 할인에 나섰다. 4월 1일은 롯데마트의 창립 기념일로 늘 할인 행사를 벌여왔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야구단 개막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달랐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이 아닌 롯데 유통 계열사에서 야구단 관련 마케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라이벌 구도는 실제로 마케팅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의 랜더스데이 기간(1∼4일)에는 할인 행사를 실시한 한우 품목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3.3% 올랐다. 이마트 관계자는 “양 사가 마케팅 경쟁을 벌이면서 소비자 혜택이 더 늘어나는 가운데 실적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2∼4일 행사 상품인 와인(104.8%), 계란(101.4%) 등의 매출도 전년보다 큰 폭으로 뛰었다. ‘롯데온’의 배너는 특히 화제가 됐다. 롯데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만든 배너는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양 사의 라이벌 구도가 부각되면서 고객의 관심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 ‘이커머스 공룡’에 위기감

양 사의 라이벌 구도는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으로 수세에 몰린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네이버, 쿠팡 등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양 사 온라인몰인 SSG닷컴(3조9000억 원)과 롯데ON(7조6000억 원)의 지난해 거래액 규모도 아직은 초라하다. 둘 다 합쳐도 미국 상장에 성공한 쿠팡(21조7000억 원)의 절반 남짓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로에 대한 과한 비난이 아니라면 오히려 라이벌 구도가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일 새벽 정 부회장이 다시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롯데가 미워서 비판한 게 아니라 야구판을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마케팅 측면에선 ‘윈윈’하려는 라이벌 구도 같지만, 실제 두 기업을 둘러싼 시장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세계, 롯데는 현재 모두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망과 이베이코리아의 오픈마켓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인수전에서 지는 쪽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롯데가 지난달 23일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를 인수한 데 이어, 신세계 SSG닷컴은 1일 여성패션몰 W컨셉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통 유통기업으로서 포지션이 비슷한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은 전방위적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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