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엔 시멘트-모래-자갈 사람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손택균 기자

입력 2021-04-05 03:00 수정 2021-04-0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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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조각가 마이클 딘 개인전 ‘삭제의 정원’

콘크리트와 철로 만든 마이클 딘의 ‘X CARE’.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거친 질감의 재료를 과감한 손질로 다루어 내놓은 결과물이 보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표현하려는 바의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5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44)의 개인전 ‘삭제의 정원’은 그 일관성의 미묘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전시다.

작가는 잉글랜드 동북부 항구도시 뉴캐슬어폰타인 출신이다. 쇠락한 중공업 중심지로 예술문화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교육 인프라도 부족한 지역이다. 최근 전시실에서 만난 그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또래 중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나뿐이었다. 학생 때는 도예에 관심이 있었지만 부유한 작가들이 사용하는 비싼 재료라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동네 슈퍼마켓에 널려 있는 저렴한 시멘트를 보고 자연스럽게 주재료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시멘트 가루와 모래, 자갈을 혼합해서 굳힌 콘크리트는 자연이 만들어낸 세상 여러 존재의 형태를 모방하는 작업에 적합한 재료다. 나라는 사람이 형성된 근본이 무엇이며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또렷이 드러내주는 재료이기도 하다.”

혓바닥 모양의 커다란 콘크리트 받침 위에 장승처럼 수직 골조를 세우고 다양한 형태로 조직한 딘의 작품들은 전시에 선보인 후에는 런던의 작업실 야외 정원에 놓인다. 이번 전시에서 세워지지 않고 눕혀진 것들은 모두 과거 다른 전시에 공개됐던 작품들이다. 시간이 흐르며 부서지고 변형된 옛 작품들 사이에 최근 작업한 신작들이 자리해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무릅쓰고 한국을 방문한 작가는 2주의 격리 기간에 손이 아닌 자신의 입술을 도구로 쓴 드로잉 연작을 제작했다. 올리브유와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종이 위에 키스마크를 연신 찍어 모래시계 등의 윤곽을 그린 뒤 시멘트 가루를 뿌려 고착시킨 것이다.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가한 주먹질과 발길질의 흔적들 사이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숱한 키스의 흔적을 걸어놓았다.

작가는 갤러리 1층 외벽 유리에 수성페인트를 거칠게 칠해 전시 기간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게 해놓았다. 얼핏 내부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시 중인 것이니 망설임 없이 들어오면 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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