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된 비결? 연륜 이기는 노력”…오비맥주의 파격 실험

뉴스1

입력 2021-04-04 08:34 수정 2021-04-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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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 글로벌 본사 AB인베브의 20대 부장 3인방이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뉴스1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한지혜(25) 신규주류사업팀 부장, 고윤지(29) 한맥 브랜드 부장, 이초운(26) 재무기획팀 부장. 2021.4.1/뉴스1 © News1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약 31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가장 혹독한 취업난이 펼쳐진 1998년(25세)보다 자그마치 6년이나 더 노력해야 직장에 첫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신입사원은 또 한 번 인고의 시간과 맞닥뜨린다. 특별한 연줄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조직의 리더 또는 한 명의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약 10~20년 이상 꾸준히 커리어를 쌓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부장 또는 임원에 오를 땐 보통 40~50대에 접어든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비맥주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엔 20년 가까운 긴 시간을 ‘접어’ 달리는 20대 여성 부장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 명의 특별한 성공 신화가 아닌, 무려 3명이다. 오비맥주 글로벌 인재 채용 프로그램 GMT(Global Management Trainee)로 입사해 국내 오비맥주 사업의 중책을 맡고 있는 20대 여성 부장 3인의 낯설고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가 부장이라는 사실은 친구들에게도 비밀이에요”

지난 2017년 오비맥주에 입사한 고윤지(29) 한맥 브랜드팀 부장은 녹색 병맥주로 유명한 ‘한맥’의 브랜드 마케팅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고씨는 사내 영업·홍보팀뿐만 아니라 외부 에이전시와 협업하며 제품 출시 초기 단계부터 브랜드 장기 콘셉트와 판매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최근 배우 이병헌과 함께한 한맥 광고 또한 그의 아이디어를 거쳐 세상 빛을 봤다.

고씨는 “나이에 비해 높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일반 기업에선 부장이 팀원을 대표하는 역할이라면 AB인베브에서는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책임진다는 뜻”이라며 “최종 승인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가 부장이라는 이름에 실려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2018년 과장 승진 이후 지난해 4월 부장 직위를 달았다. 앳된 겉모습과 달리 자신이 맡은 브랜드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할 때는 그의 명함에 자리한 부장이라는 직위가 결코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오비맥주에서 캔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BABE’(베이브)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또 한 명의 20대 부장 한지혜(25) 신규주류 사업팀 부장 역시 고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위를 특별한 자랑거리로 삼지는 않는다.

한씨는 “회사의 특별한 채용과 승진절차를 일일이 설명하기에 복잡해서 주변에 나서서 알리지는 않는 편”이라며 “또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의사 결정 과정에 권한이 크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오비맥주에 과장으로 입사한 한지혜 부장은 현재 오비맥주 스파클링 캔 와인 신규 브랜드 베이브의 기획부터 가격 정책·마케팅·소비자 분석·제품 검증 활동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그가 맡은 ‘프로덕트 오너’라는 직책은 국내에도 일부 정보통신(IT) 업계에만 있는 특별한 역할이다.

이들은 각자 맡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매니저이자 팀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일반 기업에서 5~6명 팀이 담당하는 일을 오비맥주에선 한 명의 부장이 맡고 있는 셈이다. 부사장을 포함한 최종 책임자가 있지만 대부분 의사결정에는 이들의 아이디어와 초안이 반영된다.

오비맥주는 주류 브랜드 사업뿐만 아니라 회사의 중장기 재무 계획 역시 20대 부장의 손에 맡기고 있다. 지난 2018년 입사한 재무기획팀 이초운(26) 부장은 미국에서 경제와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지난해 부장을 거쳐 이달 초 선임부장으로 승진한 재원이다.

이씨는 “현재 2021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끝났고 2022년~2024년에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거시경제나 인플레이션 수치, 소비자 동향 등을 조사하고 재무제표상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브랜드에 주력해야 하는지, 어떤 제품을 출시해야하는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도 24시간 재무 공부”…‘연륜’ 이기는 ‘노력’

GMT(Global Management Trainee)는 오비맥주 글로벌 본사 AB인베브의 글로벌 인재 채용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오비맥주는 지난 2015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패스트트랙’으로 불리는 GMT는 글로벌 우수 인재를 빠른 시간 내에 임원으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프로그램 최종 합격자는 과장 이상 혹은 중간 관리자 직급을 받고 근무를 시작할 수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초운 부장의 꿈은 외교관 또는 국제 변호사였다. 그동안 미국 대사관과 국내 로펌에서 인턴 업무를 하며 차근차근 실무를 익혔다. 그러나 대학에서 한인 학생회 회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여전히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씨는 국내에서 글로벌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GMT에 도전하게 됐다.

대학에서 재무와 회계를 전공한 것이 아니다 보니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글로벌 임원에게 공유하는 내부 감사 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이씨가 맡은 일 중에 가장 무거운 책임 중 하나였다.

이씨는 업무 초기 부족한 역량을 기르기 위해 퇴근 후를 포함해 그야말로 ‘24시간 내내’ 재무 공부에 몰두했다. 선임 부장에 오른 지금까지도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학점은행제의 전공 강의를 수강하는 중이다.

이씨는 부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부담을 ‘자신과 싸움’으로 표현했다. 그는 “저 역시 사회 경험이 많지 않고 나이가 어리다는 편견이 있지만, 회사가 믿음을 주신 덕분에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게 됐다”며 “요즘도 이런 일을 내가 해도 괜찮은지 되물으며 저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생소한 캔 와인이라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 한지혜 부장도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한씨는 “캔 와인을 기획한 후 글로벌 임원을 상대로 발표를 했는데, 한국에선 와인 시장이 이제 막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시기상 부적절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저는 오히려 역으로 이제 막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와인에 대한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캔 와인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떠올렸다.

한 부장의 전략은 소비자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정식 론칭에 앞서 기회를 얻은 임시 판매 2주 만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 제품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전체 판매량과 매출 성장이 목표다.

상사와 의견 마찰을 포함해 사회생활은 자신의 부족함을 끝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다. 연륜이 부족할수록 이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2018년 버드와이저, 2019년 코로나 브랜드를 담당하며 경험을 쌓아온 고윤지 부장 역시 여전히 이런 한계를 이겨낼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고씨는 “업무 상대와 협상하거나 대행사와 협업하는 과정은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며 “처음에는 겸손한 태도로, 또는 매우 논리적인 태도로 상대를 대하면서 나만의 업무 스타일을 찾아봤다. 최근엔 논리적인 태도와 친근한 태도 사이 절충안을 찾았다”고 말했다.


◇영어회화 실력은 필수…더 중요한 역량은 ‘오너십’

세 부장의 입사 비결은 무엇일까. 고윤지 부장은 회사의 인재상을 ‘오너십’(Ownership)이란 한 단어로 설명했다. 고씨는 “AB인베브는 도전정신이 있는지, 맡은 과제를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저는 이 능력을 오너십(Ownership)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지혜 부장 역시 주체적 태도를 강조했다. 한씨는 “저 또한 입사 당시 완성형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딪혀가며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와 공격적 성향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지원자의 상황적응력, 문제 해결능력과 함께 도전 정신이 있는지와 문제 상황에서 회복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초운 부장의 합격 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회사 임원과 면접을 보면서 위축될 수도 있지만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회사 역시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고, 또 그런 분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GMT는 국내 일반 기업의 자기소개서처럼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 형식 이력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세 부장 모두 이력서에 리더십이나 도전정신 등 자신이 갖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본사를 둔 회사답게 수준급 영어회화 실력도 필수다. 실제 GMT는 채용 과정에서 면접 전형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연간 200여명에 이르는 글로벌 GMT동기와 교류하거나 해외 본사에서 근무할 기회도 제공하고 있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한지혜 부장은 “동기 중에도 해외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많지 않다”며 “저 역시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오히려 회사에서 부딪히며 영어 실력이 더 늘었다. 채용 과정에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고윤지 부장은 앞으로 목표를 묻는 말에 “한맥 브랜드 론칭으로 마케터로 꿈을 이룬 것 같다”며 “앞으로는 한맥을 모두가 아는, 호평하는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초운 부장은 미국 파견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미국 파견 기회를 얻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아쉽게 가지 못했다”며 “미국에서 오퍼를 받은 것만으로도 1차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하고, 국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더욱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지혜 부장은 프로덕트 오너로서 길을 다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프로덕트 오너라는 역할 소비재 회사 중 오비맥주가 실험적으로 도전한 영역이다. 앞으로 이 역할이 업계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며 “이와 함께 제가 담당하고 있는 베이브 스파클링 캔 와인도 더 많은 분께 알릴 예정이니 많은 기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비맥주는 오는 6일까지 GMT 참여 신청을 받는다. GMT 합격자는 오는 7~8월 8주간 인턴 실습을 거쳐 업무 평가와 최종 면접을 거쳐 정식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채용이 확정되면 내년 1월부터 18개월간 생산·영업·마케팅 부서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글로벌 임원진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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