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0km 성지순례 준비하다 걷기 마니아 돼…“새 세상 펼쳐졌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논설위원

입력 2021-04-03 14:00 수정 2021-04-0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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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래 이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 경복궁을 배경으로 걷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정동운.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인 정충래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63)는 인도 부처님 성지순례 1080km를 준비하다 걷기 마니아가 됐다.

“지난해 5월부터 인도 성지순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45일간 성지 7곳 1080km를 걷는 대행진이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죠.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못 가게 됐습니다.”

정충래 이사가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 동화사에서 시작해 511km에 이르는 자비순례를 마치고 서울 봉은사에 다다르고 있다. 정충래 이사 제공.
시작은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었다. 지난해 서울 봉은사에서 동안거를 마친 뒤 “인도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해 뜻이 맞은 스님과 신도들이 추진했던 것이다. 정 이사에 따르면 자승스님은 “이제 불교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침체된 불교 중흥을 위해 모든 것을 바꿔보자. 코로나19 시대에 불당에 앉아 참선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근본부터 바꿔 나가자. 세상 속으로 나가 신도들과 함께 어우러질 필요가 있다. 능동적인 움직임, 걸으면서 하는 행선도 좋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행선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이사는 성지순례를 위해 매일 새벽 일어나 2~3시간씩 걸었다. 오전에 일이 있으면 오후에 짬을 내서 걸었다. 평소 가끔 등산을 했고 골프 등 스포츠도 즐겼지만 이렇게 빠져 본 적은 없었다. 그는 “걸어보니까 이렇게 좋은 게 없었어요.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훈련이 없어도 걸을 수는 있습니다”고 말했다. 물론 바른 자세로 걸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정 이사는 유튜브 등을 찾아 바르게 걷는 방법을 공부했고 신도회 회원인 ‘걷기 박사’ 성기홍 대한브레인걷기협회 이사장(61)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걸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정충래 이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아 걷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정동운.
“차를 타고 다닐 땐 보지 못했던 삼라만상이 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울 한강공원의 나무와 꽃, 돌, 사람…. 개나리 한 송이 한 송이가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걷는다는 게 이런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온 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인도 성지순례는 취소 됐다.

“당초 10월쯤 인도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취소 됐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기획한 게 대구 동화사에서 출발해 서울 봉은사까지 511km를 21일에 완보하는 자비순례였습니다.”

정 이사는 지난해 7월 충남 공주 마곡사 인근에서 100km를 걷는 예비행사에 참여했다. 당초 인도 성지 순례를 대비한 전초전격인 걷기 행사였다. 무더위에 폭우까지 왔지만 거뜬히 100km를 완보했다. 그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완보했습니다. 혼자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 신도분들과 함께 걸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걷기가 제 신체에 딱 맞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고 했다.

인도 성지순례 대신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자비순례에는 본진 80명이 참여해 말 그대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21일간 행선이 이어졌다. 산과 강을 따라 걸으며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대중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이어갔다. 코로나19로 모임이 금지된 상태라 실내투숙도 불가능했다. 모두 1인용 텐트에서 밤을 보냈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하루 적게는 6시간에서 많게는 9시간을 걸었다. 하루 평균 30km, 최대 35km를 걸었다.

정충래 이사가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까지 511km 자비순례 도중 밤을 지내기 위해 줄지어 친 1인용 텐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충래 이사 제공.
“지원단이 있어 짐을 짊어지고 다니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10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씻을 곳도 없고 매일 텐트에서 자야하고…. 적응도 안 된 상태였고 발바닥에 물집도 잡혔죠. 그런데 10일을 넘기니 다리에 힘도 생기고 내성도 생겨 편안해졌습니다. 그 때쯤 경상북도에서 충청북도로 넘어가는 최대 고비인 이화령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무사히 넘어섰습니다.”

정충래 이사(앞에서 두번째)가 지난해 10월 열린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까지 511km 자비순례에 참여하고 있다. 정충래 이사 제공.
자비순례를 마치니 체중이 7kg이 빠졌다. 98kg까지 나가던 체중을 현재도 90kg로 유지하고 있다. 걷자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옷이 안 맞아 아내가 “너무 부작용이 크다. 제발 그만 걸어라”고 농담할 정도란다. 올 1월 건강검진을 했는데 고혈압 콜레스테롤 등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고 했다. 순례를 마친 뒤에도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새벽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매주 40km 이상을 걷고 있다. 집 주변 서울 한강공원을 자주 찾았고 도심 걷기도 자주 다녔다. 체중을 80kg 이하로 낮추는 것도 목표가 됐다.

“요즘은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를 잡아 걷고 있습니다. 일명 도심지 역사투어라고 해서 서울 청계천일대 황학시장 광장시장 등을 둘러보는 ‘시장 탐방 투어’, 최근 삼일절을 기념해 삼일운동이 벌어진 태화관, 탑골공원, 그리고 인사동을 둘러보는 투어도 했습니다. 함께 점심이나 저녁도 먹습니다. 친구들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서울 한양도성길, 서울 둘레길,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여러 걷는 길을 만들어 갈 곳이 아주 많았다. 그는 “걷기 투어는 투자대비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강조했다.

정충래 이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을 돌아보며 걷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정동운.
걷기는 육체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됐지만 정신적인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됐다.

“제가 2년여 전에 은퇴를 했습니다. 솔직히 계획도 없이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정년퇴직을 했는데…. 걷기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됐습니다. 걸어서 몸이 건강하니 정신도 맑아졌습니다.”

정 이사는 경기도 의정부 영석고 교장을 맡아 지역 명문고로 키운 인물이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등 경기도교육청 2017년 사학기관 평가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교육계를 떠난 그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정 이사는 올해도 인도 성지순례가 쉽지 않아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승보사철 송광사(전남 순천)에서 출발해 법보사찰 해인사(경남 합천)를 거쳐 불보사찰 통도사(경남 양산)에 이르는 불법승 3사 투어 행선에도 나설 예정이다.

정충래 이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 걷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정동운.
“행선은 스님과 신도, 남녀 구분 없이 자기 발로 걸어야 합니다. 줄 서서 걷고, 걸은 순서대로 밥도 배급 받아 먹습니다. 모든 절차에 차별성이 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이뤄집니다. 스님이라고 특별대우 받는 것도 없습니다. 공정이 화두인 현 시대에 딱 맞는 수행방식입니다.”

정 이사에 따르면 자비순례를 다녀오신 스님들이 각 지역 사찰에서도 걷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4월 7일 해인사에서도 걷기 행사가 열린다.

“걷다보니 새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건강도 따라왔습니다. 100세까지 살고 싶어서가 아니고 오늘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려고 걷고 있습니다. 걷기에 대해 늦게 눈을 떴지만 걷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평생 걸을 생각입니다.”

이제 본격 걷기 인생 2년차인 그의 걷는 모습에선 건강함과 즐거움이 함께 묻어났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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