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만에 다세대주택 설계 뚝딱… 경매 적정가 예측도

정순구 기자

입력 2021-04-03 03:00:00 수정 2021-04-03 08: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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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에 ‘AI 바람’]스타트업 중심 ‘AI활용서비스’ 붐

게티이미지코리아

은퇴한 뒤 주택 임대사업을 하는 김모 씨(62). 최근 서울에 다세대주택을 지으려고 위치를 물색한 끝에 후보지를 3곳 추렸다. 토지 연면적이 모두 150m² 내외로 비슷했다. 하지만 토지별로 용적률이나 건폐율이 달라 지을 수 있는 가구 수가 달랐다. 어디에 짓는지는 임대료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문제여서 기존에는 건축 설계사무소를 찾아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를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김 씨가 ‘인공지능(AI) 건축설계 서비스’를 통해 토지 3곳의 지번을 입력하자 3차원(3D) 형태로 설계된 집 모양이 떴다. 각 토지의 최대 용적률과 최대 건폐율, 최대 층수는 물론이고 이를 반영해 그가 지을 수 있는 가구 수까지 파악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았다. 김 씨는 “단기간에, 그것도 무료로 사업을 진행할 토지를 결정하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 AI가 설계하고 부동산 감정평가도 하는 시대



가장 보수적인 시장으로 불리던 부동산 업계에 ‘AI 바람’이 불고 있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AI 기술을 활용한 각종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면서다. 다세대주택 설계를 10초 만에 AI가 완성해주는가 하면, 부동산 권리분석이나 경매 적정가 예측도 AI가 대체해주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AI 건축설계사나 AI 감정평가사, AI 경매사 등이 잇달아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씨가 이용한 서비스는 토지 건물 정보업체 밸류맵과 건축설계 전문기업 텐일레븐이 선보인 AI 건축설계 서비스다. 사용자는 업체 사이트나 모바일 화면에서 원하는 필지를 선택하고 ‘10초 만에 무료설계’ 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후 △최대 용적률 △최대 건폐율 △최대 층수 △대지 안의 공지 △일조사선 △도로 쪽 판별 △경사도 △지구단위계획 △도시계획조례 △서비스면적 △필로티 구조 등을 고려한 설계 결과물을 3D 모델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런 정보는 각종 도시계획 규제와 건축 규제 등을 반영한 결과다. 사업자는 해당 토지에 지을 수 있는 건물 규모와 가구 수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 특히 신축 사업성에 큰 영향을 주는 허용 주차 대수나 지역별 지구단위계획도 설계 결과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건물 설계뿐만 아니라 실제 지형(경사도 등)과 주변 건물의 형태까지 3D로 볼 수 있다. 건물에 해가 잘 드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일조량 시뮬레이터를 통해 지형 특성과 인근 건물에 따른 일조량 변화를 사전에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밸류맵 관계자는 “비슷한 유형의 토지와 가치평가 대상 토지를 비교하고,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을 기반으로 가치를 산정한다”며 “주변 상권의 매출 자료나 유동인구 등도 활용해 서비스 수준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부동산 직거래 시 법률 자문 서비스도 제공

대학생 황모 씨(24)는 최근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하지 않고 원룸 임대차 계약을 했다. 부동산 직거래 플랫폼인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피터팬)를 통해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을 구했다. 중개수수료라도 아껴 보려는 생각에 중개업소를 통하지 않는 거래를 시도한 것이라 걱정이 컸지만 의외로 어려움은 없었다.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계약서 양식을 제공받는 것부터 시작해 원룸의 권리분석이나 법률 자문까지 끝낼 수 있었다. 앱이 안내한 절차에 따라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됐다. 이 앱은 AI 시스템을 활용한 것으로, 매물 권리분석을 자동으로 해준다. 집주인이 해당 매물을 담보로 근저당을 얼마나 설정했는지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서 매물 등기부등본을 떼보지 않아도 된다.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

정보 제공 차원인 만큼 권리분석 내용에 대한 책임이나 배상 의무는 없지만, 부동산 중개업소의 품질 대비 비싼 수수료 때문에 부동산 직거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최근에는 월세와 같이 보증금이 싼 거래에서만 종종 이뤄지던 직거래 방식이 전세는 물론 매매 계약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인 ‘다방’도 부동산 권리분석을 AI가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AI가 등록된 부동산 매물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발급받아 부동산 권리관계를 분석하고, 거래 안전 정보를 확인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방식. 소비자는 AI가 분석해준 거래 안전 등급뿐만 아니라 변호사가 자문에 응한 부동산 권리관계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이 AI는 부동산 매물의 거래 안전 등급을 △안전 △양호 △안전장치 필요 등 총 3등급으로 구분한다. 근저당권이나 전세권, 임차권 등이 설정되지 않은 ‘안전 등급’의 부동산 매물일 경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어요’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매물에 전세권이나 임차권, 근저당권이 1개 이상 설정된 ‘양호 등급’에는 ‘아래 사항을 확인한다면 괜찮아요’라는 문구가 뜬다. 함께 확인해야 하는 사항을 일러줘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할 수 있게 돕는다. 권리관계를 꼼꼼히 살펴봐야 할 ‘안전장치 필요 등급’은 ‘중개사님과 상담하여 신중하게 거래하세요’라고 명시해준다.

○ “정보 공유로 서비스 다양해질 것”

이모 씨(62)는 3년 전 경기 남양주시 인근의 한 토지에 투자했다. 전체 필지의 10% 정도의 지분을 사는 데 3000만 원을 썼다. 직접 방문한 토지는 활용 가능성이 ‘0’에 가까운 맹지였다. 하지만 “곧 주변에 도로가 생기고, 개발이 시작되면 10배 이상은 벌 수 있다”는 중개업자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계약을 진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개업자와 연락이 두절됐다. 토지는 여전히 맹지인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씨는 “전형적인 기획부동산에 당했다”며 “가족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은 이 씨와 같은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획부동산 사기 등 이상 거래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토지거래위험 경보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보통 기획부동산과 같은 부동산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공적 장부와 계약서를 검토하고, 권리분석을 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를 생략한 채 기획부동산 업체 직원들의 말만 믿고 거래해 피해를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동산원의 경보시스템은 실거래가와 공시지가 등 부동산 빅데이터와 지리정보시스템(GIS), 부동산 사기범죄 사례 등을 분석해 알려준다. 경보시스템이 잠재적 위험 요인을 알아서 찾아주는 만큼 부동산과 관련한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거래 위험을 진단할 수 있다.

부동산원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공시가격 산정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토지특성 자동조사 시스템’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토지의 경사, 방위, 도로접면 등을 자동으로 조사한다. 공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알려준 토지 정보를 바탕으로 공시가격을 산출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과 정확성 등을 높일 수 있다.

AI 기술은 부동산 경매에서 예상 낙찰 가격을 산정하는 데도 사용될 예정이다.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은 올해 하반기(7∼12월)까지 연세대 금융공학연구실과 AI 기반의 ‘경매 적정가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낙찰가 예측 시스템을 활용하면 낙찰 시기, 경매 수익률 등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은행에서는 예상 낙찰가를 근거로 개별 물건의 대출 금액이나 금리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예상 낙찰가의 정확도가 올라간다면, 대출과 경매 진행 시 필수적인 고비용의 감정평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이는 지지옥션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책 사업인 ‘2020년 비대면 비즈니스 디지털혁신기술개발사업’의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추진하는 것으로, 연세대 금융공학연구실은 20년 넘게 금융 관련 AI 분야를 연구하면서 국제학술지 40편을 포함해 총 70편의 금융, 인공지능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지지옥션은 37년 동안 400만 건이 넘는 경·공매 부동산 자료를 축적해왔다. 특히 유치권 등 특수권리에 대한 심층분석 자료는 낙찰가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만큼 예측의 정확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 부동산팀장은 “과거 부동산 산업은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비스 고도화가 느렸던 측면이 있다”며 “AI 기술을 통해 더 다양한 부동산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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