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한 왕자를 바라노라”… 세종대왕의 ‘성주맞춤’

성주=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입력 2021-04-03 03:00 수정 2021-04-03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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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북 성주

세종대왕의 직계 후손 19명의 태를 봉안한 선석산 자락의 세종대왕자 태실.

《“남아의 태(胎)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고 벼슬이 높으며 병이 없을 것이요, 여아의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얼굴이 예쁘고 단정하여 남에게 공경과 우러름을 받게 된다.” 당나라 때 승려이자 풍수학자인 일행(一行) 선사가 남긴 말이다. 태를 봉안하는 좋은 땅이란 어디일까. 그 모범 답안이 경북 성주군 월항면의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제444호)이다. 선석산 자락 태봉 정상에 있는 이곳에는 세종대왕의 왕자 18명과 손자 단종 (단종이 세자로 책봉된 후에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로 이전) 등 총 19개의 태실이 조성돼 있다.》

세종대왕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을 최고의 길지로 선택했다. 지형적으로도 그렇다. 선석산에서 태봉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 줄기 맥은 산모와 태아를 이어주는 탯줄을 연상시키며, 태실이 자리한 태봉은 산모의 자궁처럼 보인다.

태아를 안전하게 지키는 자궁답게 봉우리 정상의 태실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교차하면서 생기(生氣)가 감도는 명당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왕자들의 태실이 군집을 이룬 국내 유일한 형태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 왕들은 탯줄도 명당에 봉안돼

세종대왕자 태실로 올라가는 계단길에는 우거진 소나무, 탱자나무 등이 운치를 더해준다.
생명 기운이 넘쳐나는 세종대왕자 태실 주위로는 태실의 역사와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볼거리도 적지 않다. 조선 영조 때 태실 수호사찰로 지정된 선석사에는 신생아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실법당’이 있고, 태실의 역사와 정보를 제공하는 태실문화관도 있다. 가족 나들이와 소풍 장소로도 좋은 생명문화공원에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조선 역대 왕들의 태실을 재현해놓고 있다.

사실 태실 풍속은 고대 한국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우리 선조들은 산모와 신생아를 연결하는 태(혹은 탯줄)를 생명체 혹은 영성이 깃든 존재로 여겼다. 나아가 태를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신생아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신체의 일부인 태를 길한 곳에 묻으면, 그에 감응한 태의 주인 역시 좋은 기운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 풍수에서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고 한다.

태실을 지키는 역할을 하던 선석사 경내에는 신생아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실법당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태실 풍속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595∼673)이 태어난 충북 진천의 태령산(胎靈山) 정상에는 김유신 태실(사적 제414호)이 있다. ‘삼국사기’는 “김유신의 탯줄을 높은 산에 묻었는데, 지금(고려)도 그 산을 태령산이라 한다”고 기록했다. 고려 때는 국가공인 지관(地官)을 뽑는 과거 과목에 ‘태장경(胎藏經·태실 조성용 풍수지리서)’이 있을 정도로 태실을 중요시했다. 조선의 역대 왕들 역시 국운 융성을 위해 태실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고 조선 사대부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탯줄을 생명체로 보고 함부로 다루지 않던 조선의 풍속은 언제부턴가 경시됐다. 지금은 병원에서 받아온 탯줄을 냉장고 속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지내거나, 액자나 인형 등 신생아 기념품 정도로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인재 배출한 명당 터 한개마을

성주군에서는 세종대왕자 태실이 생명 탄생의 공간이라면,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개마을(월항면 대산리·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은 생기가 충만한 삶의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마을 뒤와 좌우로 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지형) 명당 터인 한개마을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왔고 격조 높은 선비문화를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개척한 이후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지어진 70여 채의 전통 가옥이 들어선 이곳에는 집집마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성산 이씨가 한개마을에 입향할 당시 지어진 ‘응와종택’(1721년 창건)은 그 후손들이 모여 서책을 읽고 인격을 도야하는 등 마을의 발상지 같은 곳이다.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집은 잘 가꿔놓은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또 ‘한주종택’(1767년 창건)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집으로 명성이 높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이진상을 비롯해 아들 이승희, 손자 이기원 이기인 등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한 국가유공자들이 배출됐다.

한주종택의 안채.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 중 한 명인 한주 이진상과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대계 이승희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
‘대산리 진사댁’으로 명명된 전통 가옥은 卍(만)자 문양의 특이한 문창살과 함께 아파트 발코니처럼 경관을 즐길 수 있는 2층 난간의 누마루가 설치된 새사랑채가 눈길을 끈다. 후손이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하여 ‘대산동 교리댁’으로 불리는 전통 가옥(1760년경 창건 추정) 대문 앞에는 ‘제9회 변호사시험 최상위권 합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보일 듯 말 듯 걸려 있다. 대대로 과거 급제를 해온 조상들을 본받아 그 후손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것을 자부하는 글귀가 미소를 띠게 한다.

한편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수빈 형제들이 출생한 집 안채는 인재가 태어나는 명당 터로 소문났다.

이 마을 사람들은 협동조합 형태인 ‘한개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다. 한개마을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후 관광객이 늘어나자 숙박, 전통 음식, 전통 체험 등을 제공하고 있다. 명당 기운이 있는 터에 마련된 ‘한옥 스테이’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몸이 가볍고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연인들의 힐링 코스인 가야산 정견모주길

산책이나 숲속 호젓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성주군 ‘성밖숲’(경산리)과 가야산 자락의 가야산역사신화공원 ‘정견모주길’을 추천한다. 성밖숲은 성주읍성 바깥에 조성한 숲으로 300∼500년 수령의 왕버들 52주가 자생하고 있다. 아름드리 우거진 왕버들이 생명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성주군 ‘성밖숲’에 있는 왕버들 산책길. 태실 태봉안 재현행사가 매년 열리는 곳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왕버들 산책 코스는 지역 주민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해마다 열린 세종대왕자 태실 태봉안 의식 재현 등 성주생명문화 축제도 이곳에서 개최된다.

가야산역사신화공원 일대는 계곡을 따라 격조 높은 인테리어를 갖춘 펜션들이 들어서 있는데, 젊은 부부들의 태교 여행 혹은 연인들의 힐링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곳에는 가야산의 신화와 전설이 가득하다. 가야산의 여자 산신 정견모주가 하늘의 신인 이비가지와 혼인해 뇌질주일(대가야의 이진이시왕)과 뇌질청예(금관가야의 수로왕)를 낳았다는 전설이 대표적이다.

가야산 자락 정견모주길 산책로에 있는 ‘생명(가족)바위’. 두 바위가 서로 안아주듯 겹쳐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정견모주길에는 이런 전설을 상징하듯 폭포와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임신부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둘레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조성돼 있다.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얼레지 현호색 등 보기 힘든 야생화를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환하게 불이 밝혀진 성주읍성의 야경.
정견모주길 곳곳에 설치된 정자 명당 터에서 허기를 달래줄 겸 성주 특산인 참외와 함께 성주 청년들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참외조청, 참외빵을 맛보았다. 그러고 보니 참외에는 임신부에게 필수 영양소인 엽산이 여느 과일보다 풍부하다. 2세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성주 태교여행은 안성맞춤인 듯하다.


사진·글 성주=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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