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은행원들이 도운 위치인증 스타트업… 직원 4명→16명

김형민 기자 , 신지환 기자 ,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4-02 03:00 수정 2021-04-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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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1주년]리빌딩 대한민국 1부 포스트 코로나, 공존금융이 온다
<2> 고용창출 마중물 붓는 금융





위치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엘핀’은 지난해 NH농협은행과 손잡고 ‘가고 싶은 대한민국 적금’ 개발에 나섰다. 고객이 여행을 다니며 전국 곳곳에서 위치 인증을 많이 받을수록 금리를 더 얹어주는 혁신적인 상품이었다.

“어, 울릉도에서 인증이 됐다.”

상품 개발을 위한 시범 운영 도중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울릉도, 백령도에서도 갑자기 인증이 이뤄진 것이다. 오류인 줄 알고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신호의 정체는 농협은행 울릉도지점 직원들이었다. 스타트업을 돕기 위해 전국 농협은행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위치 인증에 참여한 결과였다. 시험운영은 성공했고 신상품은 지난해 8월 세상에 공개됐다. 주은정 엘핀 대표는 “은행의 탄탄한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금융회사들도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스타트업)을 길러내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성장 동반자’의 역할을 한다. 금융 지원과 투자를 넘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혁신기업을 발굴하고, 미래 주역인 청년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 “고용 창출로 보답하고 싶어”

엘핀은 2017년 1월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 등이 세운 회사다. 이동통신 기지국의 고유한 위치 정보를 활용해 본인 인증을 하는 기술력이 있지만 투자를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2년 넘게 근근이 버티다가 2019년 봄 농협은행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NH 디지털챌린지’를 통해 서울 서초구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 입주했다. 은행 디지털부서와 스타트업들이 한데 모여 일하는 이곳에서 엘핀은 경영 컨설팅과 멘토링을 통해 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은행 주선으로 벤처캐피털 20여 곳도 만났다. 별 따기만큼 힘들었던 투자 유치도 18억 원 넘게 받았다.

엘핀의 기술은 이제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에서도 쓰이고 있다. 직원도 4명에서 4배인 16명으로 늘었다. 주 대표는 “스타트업이 대형 금융사와 손잡았다는 것 자체로 인재와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금융사를 매개로 ‘창업기업 육성 → 중소기업 성장 → 일자리 확대’라는 스타트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된 것이다.

글로벌 주류회사 임원 출신 박철수 대표가 ‘아워박스’를 창업한 건 2017년 6월. 전자상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복잡한 물류 절차를 대신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회사를 꾸려가고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건 만만찮았다. 결국 지난해 초 IBK기업은행의 창업육성 프로그램 ‘IBK창공’의 문을 두드렸다. 박 대표는 은행의 도움을 받아 신용보증기금을 만났고 신생기업으로 기대하기 힘든 20억 원의 보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한라홀딩스, 네이버 등으로부터 100억 원을 투자받았다. 삼성물산, 유한킴벌리 등 대기업과도 손잡고 일하게 됐다. 4명으로 출발한 직원은 75명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만 25명을 새로 뽑았다. 박 대표는 “회사가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은 우수한 인재다. 도움을 받은 만큼 고용 창출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 “스타트업 지원, 일자리·혁신 성장 가속화”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서 금융사들은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KB금융,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의 스타트업 지원·육성 프로그램을 거쳐 간 스타트업은 지난해 말 기준 384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성장한 스타트업들이 엘핀, 아워박스처럼 채용을 늘린다면 혁신, 첨단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수천 개씩 만들어지는 셈이다.

‘메사쿠어컴퍼니’의 이지훈 대표는 지난해 1월 창업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이 일상화되자 이 대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의 안면인증 기술은 큰 주목을 받았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메사쿠어는 지난해 6월 하나금융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하나원큐 애자일랩’에 선발됐다. 하나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 개편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 회사의 얼굴 인증 기술은 곧바로 앱에 적용됐다.

하나은행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생기면서 메사쿠어는 창업 1년 만에 매출이 3배로 뛰었고 6명이던 직원도 18명으로 늘었다. 다른 금융사들의 협업 제안도 쏟아진다. 이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대형 금융사의 지원이 더해지면 기술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상용화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도 적극 발굴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9년 10월 베트남에서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디노랩’ 운영을 시작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창업한 한국의 금융결제 기술 지원 스타트업 ‘인포플러스’는 디노랩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의 주선으로 150억 원의 투자 제안을 받았고 인도, 아프리카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금융권의 스타트업, 청년 창업가 지원은 사회 전반의 혁신 성장을 가속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금융과 혁신기업 간의 상생 생태계가 조성되도록 정부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국내 1호 스타트업 지원기관 ‘디캠프’ 19개 은행서 8450억… 110개 기업 입주



무상 사무실에 재무-법률 등 컨설팅
AI-블록체인 기업 등 ‘유니콘’ 꿈꿔
유망기업 직간접 투자도 계속 늘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 있는 ‘프론트원’ 빌딩. 3층 라운지에 들어서자 50명이 넘는 젊은 직원들이 노트북을 켜놓고 업무를 보거나 화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규모(지상 20층, 연면적 3만6259m²)로 문을 연 스타트업 지원·육성센터. 현재 헬스케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첨단 분야의 11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입주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의 꿈을 꾸고 있다.

‘더트라이브’의 전민수 대표(39)는 프론트원 설립 때부터 18층에 둥지를 틀었다. 1년 단위로 중고차를 빌려주는 신개념 구독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전 대표는 “무상으로 사무실을 지원받을 뿐 아니라 재무, 투자, 법률, 마케팅 등과 관련한 각종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 입주하는 건 모든 스타트업의 꿈”이라고 했다.

디캠프는 2012년 국내 18개 은행이 5000억 원을 출연해 출범시킨 국내 1호 스타트업 지원기관이다. 현재 출연 금융사는 19곳, 출연금은 8450억 원으로 늘었다. 이를 기반으로 디캠프는 국내 최대이자 가장 오래된 스타트업 사업 설명회인 ‘디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매달 열리는 디데이에선 창업가들이 내놓은 혁신 아이디어와 사업 계획 등을 심사해 입주할 기업을 뽑는다. 지원받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디캠프는 서울 강남구에 이어 마포구에 2호 센터도 열었다. 두 곳에 120여 곳이 입주해 있다.

‘몽가타’의 정태현 대표(31)는 2013년부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종합 수면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해 왔지만 번번이 상용화에 실패했다. 남은 건 7억 원의 빚뿐. 7년간 준비하던 사업을 포기하려던 차에 디데이의 문을 두드렸다. 우승을 거머쥔 그는 지난해 8월 강남구 디캠프 센터에 들어왔다.

몽가타는 디캠프로부터 직접 3억 원의 투자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디캠프가 연결해준 벤처투자자와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새 직원은 2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시제품 공개도 앞두고 있다. 정 대표는 “꼬이기만 하던 사업이 디캠프에 들어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디캠프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스타트업에 51억3000만 원을 직접 투자했다.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 규모는 1818억7000만 원에 이른다. 간접투자를 늘리기 위해 디캠프 센터엔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를 비롯해 한국성장금융, KDB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이 상주하고 있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팀은 디캠프의 투자로 3년간 3197억 원가량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신지환·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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