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폭탄’ 던진 정부, 뒤늦게 “내년에도 급등땐 세제 보완”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4-01 11:48 수정 2021-04-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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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시민단체의 발표로 시작된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이 한 달이 지나면서 국정 전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정부와 여당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한 수준을 넘어 냉기마저 흐른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부가 “부동산 문제, 자신 있다”며 시장의 우려를 무시한 채 규제와 공공 주도 공급 방식에 올인해온 부동산 정책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LH 사태 파장이 점점 더 위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고구마 줄기처럼 공직자 부동산 불법 투기 사례가 잇따라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부동산 정책 방향과는 상반되는 정책을 쏟아내는 여당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 LH 사태 이후 추락하는 지지율
경찰이 투기 의혹이 이는 LH 관련 여러 곳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9일 오후 경기 광명시 일직로 한국토지주택공사 광명시흥사업본부의 모습.광명=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LH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이후 정부는 공직자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대규모 수사조직을 꾸리고, 토지 관련 각종 규제방안을 종합한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 등을 쏟아냈다. 또 LH SH 등 공공이 주도하는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5·6대책’ ‘2·4 대책’ 등의 후속방안도 잇따라 내놨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은 커지기만 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주간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2월 말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업치락뒤치락 하는 모양새였다. 특히 2월 마지막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32.9%로, 국민의힘(30.7%)을 근소하게나마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투기 의혹이 제기된 3월 2일 직후 실시된 조사(3월 2~5일)에서 민주당(31.0%)과 국민의힘(32.0%)의 지지율은 다시 역전됐다. 이후 양당의 지지율은 차이를 벌리기 시작해 3월 마지막 조사(3월22~26일)에서는 민주당(28.3%)과 국민의힘(39.0%)의 격차가 무려 10%포인트 이상 커졌다. 특히 서울권역에서 국민의힘 지지율(41.2%)은 전주보다 2.3%포인트 상승하며 40%를 넘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는 더 심각하다. 올해 들어 지지율은 35~40%대 초반을 오갔고, 2월 중순 이후 들어서는 꾸준히 40%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LH 땅 투기 의혹 제기 이후 하향세로 반전해 3월 마지막 조사에선 34.4%로 떨어졌다. 반면 올해 들어 꾸준하게 50%대에 머물던 부정평가는 62.5%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최고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일반 실수요자도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내고, 부작용을 우려한 시장의 반대에도 LH를 앞세운 공공 주도 공급정책에 집착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또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고 말했지만 집값은 이후 더 급등했고,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정작 공직자 부동산 투기 사례가 잇따른 데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쏟아지는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들

문제는 이번 사태의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 사례가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앙·지방 공무원, 지방자치단체 의원, 국회의원 등이 주도한 불법 투기로 여겨질 만한 행태들이 연일 언론을 타고 있다. LH 직원뿐 아니라 공공 정보를 일반인보다 먼저 쉽게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상당수 투기 행위를 해왔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수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기준 내사 및 수사 중인 사건은 125건, 576명에 달했다. 지난달 11일 출범하고 20일 만에 나온 결과다. 수사 대상자 유형도 다양하다. LH 직원은 35명이고, 공무원이 94명, 지방의회 의원이 26명이다.


특히 현직 국회의원과 그 가족 등 10명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의원 본인의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고발·진정된 경우가 5명이고, 가족이 고발돼 있는 게 3건이다. 2건은 고발은 이뤄졌는데 부동산 투기 의혹과는 별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임대차 3법 시행’ 전후로 임대료를 대폭 올린 사실은 불법 여부를 떠나 폭발하고 있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김 전 실장은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전세가 상한제 적용을 피했다”며 고발하면서 경찰의 수사 대상에까지 올랐다.


특수본 관계자는 1일 “김 전 실장을 상대로 제기된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업무상 비밀이용) 혐의 고발사건을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른바 ‘경찰판 특수부’로 불린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전 실장에 대해 고발된 내용이 법률 위반인지는 확인해야 한다”며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전세금 인상 행위가) 문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수본은 김 전 실장 고발 건이 부동산 투기로 분류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 흔들리는 부동산 정책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당이 잇따라 ‘자기부정’ 정책을 쏟아내면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공시가 현실화율에 대한 조정 검토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당에서 적극적으로 어떻게 조정하는 게 합리적인지 검토에 들어갔다”며 “공정한 과세라는 점과 너무 급격한 인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고려해 판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9억 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가 인상률이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당에 강력하게 건의하고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데에 화답한 것이다.


당초 정부 여당은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에 따라 2030년까지 공시가를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급격하게 오른 공시가에 불만이 커지자 부랴부랴 공시가 상승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국토부도 이에 대해 수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이 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과 관련해 “내년에도 공시가격이 많이 올라 1가구 1주택 재산세 감면 혜택을 볼 수 없는 가구가 많아지면 세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밖에도 민주당은 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핵심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를 손보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박영선 후보는 재개발·재건축을 일부 허용하겠다는 공약까지 공개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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