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생각하면 답 없지만… 정부 정책 별로 기대 안해”

이소연 기자 , 이기욱 기자

입력 2021-04-01 03:00 수정 2021-04-01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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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1 주년]극과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심층인터뷰로 본 ‘부동산 인식’





#1. 대학생 정예진 씨(23·여)는 지난해 12월 수도권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부산에 사는 부모님 역시 ‘월세살이’라 손 벌릴 여유가 없다. 정 씨는 여기서 계약 기간 6년을 꽉 채울 예정이다. 문제는 6년 뒤다. 정 씨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넥스트 플랜’이 떠오르질 않는다”며 한숨지었다.

#2. 미국 유학생인 강모 씨(22·여)는 지난해 11월 울산에서 2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분양가 1억8000만 원은 직접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마련했다. 물론 종잣돈 5000만 원은 부모님이 줬다. 하지만 그걸 4배 가까이 불린 건 강 씨다. 준공이 1년 정도 남은 아파트는 현재 분양가보다 7000만 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 생존의 공간 vs 투자의 대상

“서른 살까지 빠듯하게 모아봤자 1억 원 아니겠어요. 요즘 서울 평균 아파트 값이 10억 원이라는데 부모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대출 받으면 9억 원을 받아야 하는 거네요. 60년 상환을 해야 하나…. 죽기 직전까지 집값만 갚으란 소리네.”(박모 씨·26)

청년들에게 ‘집’은 참 힘겨운 존재다. ‘청년과 청년이 만나다’에서 만난 청년 10명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주택에 대한 고민이 컸다.

하지만 집을 대하는 자세는 청년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집을 사는 곳으로 보느냐 투자처로 보느냐에 따라 부동산정책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집을 살 곳이라고 인식한 청년들에게 집은 ‘기본권’이란 인식이 강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등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집을 ‘투자처’로 바라보는 청년들은 부동산정책이 투자 규제 완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봤다. 요즘 직장인 박용화 씨(32)의 최대 관심사는 ‘기승전 주식’이다. 박 씨는 “2018년에 내 집 마련을 준비하면서 주식시장에 월급의 절반가량을 붓고 있다”며 “적금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공격적인 투자로 자산을 불리지 않으면 집값의 오름세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집을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청년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보다 큰 정부를 원했고, 집을 투자처로 인식하는 청년들은 ‘투자 공부’ 등 스스로 해법을 찾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 “우린 모두 부동산정책의 피해자”

“집값요? 신이 재림해도 해결 못 할걸요.”

조모 씨(30)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 고향 강원도로 돌아왔다. 도저히 서울에서 자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전세로 살며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지방도 요즘엔 녹록지 않아 답답함은 여전하다.

청년 10명의 인터뷰 텍스트에서 드러난 특징은 다른 대목에서 발견됐다. 집에 대한 인식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격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실망과 시장에 외면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청년 10명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내 집 마련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였다. 청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정예진 씨마저 “공공주택이 지금 당장 필요하긴 하지만, 여기에 발을 묶이는 기분이 들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부동산정책의 ‘공동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청년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말할 때 ‘실패’라는 단어를 공통으로 사용했다”며 “집값이 안정화될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고 정책 입안자인 86세대에게 요구하거나 주문하지 않는다. 어차피 말해봤자 듣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왜 하필 우리 세대에 와서 이러는 걸까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울산에 자기 집을 가진 강 씨조차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들의 눈에 기성세대는 이미 부동산으로 자산 증식을 실컷 누렸으면서, 자신들 세대에게선 그 기회조차 빼앗고 있다는 분노가 배어 있었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이미 부동산 막차를 놓쳐버렸다는 박탈감은 청년의 일생을 따라다닐 후유증을 남겼다”며 “적어도 부동산정책을 논할 때 청년 세대는 더 이상 극과 극이 아닐 수 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이기욱 기자



▶ 극과 극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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