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일상 책임지는 엔지니어링… “제대로 대우 받는 환경 조성돼야”

정상연 기자

입력 2021-04-01 03:00 수정 2021-04-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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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
열악한 처우에 고급 인력 이탈
산업 경쟁력 약화되는 ‘악순환’


부산북항

이해경 회장
우리는 부동산을 구매할 때 역세권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역세권이면 가격이 높아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뿐이 아니다. 새롭게 역이 들어선다는 소문만 나도 집값이 들썩이고 KTX나 공항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는 사회기반시설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러한 사회기반시설에는 엔지니어링산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엔지니어링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지만 막상 엔지니어링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쉽게 말하면 엔지니어링은 과학과 기술을 우리 삶에 접목하는 것이다. 전선을 통해 들어오는 전기를 사용해 불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어 상수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수돗물로 샤워를 하며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한강으로 가로지르는 교량을 건너는 등 우리가 편리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엔지니어링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진 덕분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로, 교량, 공항 등의 기반시설부터 통신망, 산업 플랜트, 폐기물 처리, 항공 산업에 이르기까지 엔지니어링의 분야는 다양하다. 이와 같은 사회기반시설들은 기획, 조사, 설계, 시공(공사), 감리, 유지보수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고 유지되는데 시설물을 실제로 짓는 시공 과정을 제외한 모든 과정이 바로 엔지니어링이다.

이처럼 엔지니어링이 국민의 삶과 직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고 1980년대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건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엔지니어링산업은 국가 발전의 첨병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일부 제도의 비정상적 운영으로 시공사의 하청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시현상이 생겨났고 여기에 공무원 및 공기업 등 안정적 직장을 선호하는 사회풍조가 겹치며 요즘은 대학 관련 학과 졸업생들로부터도 외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본 설계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해야


이순신대교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 우리나라 엔지니어링산업은 성장동력을 잃고 프로젝트 관리(PM)나 기본 설계와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의 진입이 늦어지게 됐다. 결국 국내 대형프로젝트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최장 교량이자 세계 5위 사장교인 인천대교 공사를 들 수 있다. 총 사업비(2조5000억 원) 중 저부가 시공(공사)은 56%(1조4000억 원)로 삼성물산 등 국내 건설사가 맡은 반면 고부가 지식서비스인 프로젝트 관리와 기본 설계는 44%(1조1000억 원)로 영국의 AMEC사에서 수행했다.

최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구잡이식 건설보다 기획 단계부터 면밀히 조사하고 환경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는 등 무엇보다 국민의 안전과 쾌적한 일상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엔지니어링이다. 이처럼 엔지니어링이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대가와 우수한 인력의 업계 유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오늘날 엔지니어링업계의 가장 큰 문제로 일한 만큼 적정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꼽힌다. 예산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적정 금액 이하로 정부 예산이 편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저가 입찰을 유도하는 제도로 기업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기술자의 임금 및 처우가 열악해지고 고급 인력이 이탈해 결국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현실적인 엔지니어링산업 육성 전략 필요


인천공항
한국엔지니어링협회(회장 이해경)는 엔지니어링산업의 발전과 우수 인재 육성을 위해 정부에 사업대가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따르면 발주청은 엔지니어링사업에 대해 적정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만 그동안 근거 없는 기준이나 발주자의 자체적인 산출방식을 적용해 원가 이하의 보수를 지급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에 협회는 올바른 엔지니어링 사업대가 산출을 유도하기 위해 대가 산정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시작해 올해 말 오픈할 예정이고 실비정액 가산방식(직접 인건비, 직접 경비, 제경비, 기술료를 합산해 대가를 산출하는 방식) 적용 확산을 위한 표준품셈도 지난해 8건에서 올해 27건으로 개발을 대폭 확대한다. 또 협회는 적정한 대가 지급을 위해서는 유연한 예비비 반영이 필요하다는 점도 중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사업비의 일정 비율을 예비비로 확보해 계약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추가적인 업무가 발생할 경우 합당한 비용을 청구하고 보상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적격통과점수 상향이 받아들여져 조달청을 비롯한 11개 발주기관의 낙찰하한율이 최대 7% 상향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 밖에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 및 인식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엔지니어링산업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제고하고 산업 종사자들의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엔지니어링 어워드’를 신설할 예정이다. 준공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사회기반시설물을 대상으로 창의성, 완성도, 기여도 등을 고려해 최고의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다.

협회 측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예산 책정 등으로 발생하는 안전 문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발주체계부터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엔지니어링을 경제와 국민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엔지니어링산업이 선진국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어 업계의 발전이 곧 우리 국민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엔지니어링산업에 대한 국민의 많은 관심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엔지니어링협회는 국내 엔지니어링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로 1974년 6월 당시 기술용역육성법(현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근거해 설립된 이래 엔지니어링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 및 회원사와 기술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5422곳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엔지니어링 기술자 15만9903명의 경력을 관리하고 있다.

정상연 기자 j3013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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