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잠재적 범죄자냐”…‘모든 공직자 재산등록’ 반발 확산

뉴스1

입력 2021-03-30 15:13 수정 2021-03-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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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료사진. /뉴스1

정부와 여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사태와 관련해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공직자 재산등록 범위를 9급까지 확대하는 안을 내놓자 공직사회 내 반발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투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하위직 직원들에게 까지 재산등록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30일 전국 지자체 등에 속한 공직자들은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9급 공무원까지 재산 등록을 의무화한다는 당정 계획을 두고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는 등 들썩였다.

일선 공무원들은 공직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한데서 기인한 급조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전반적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공무원을 제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아울러 재산등록 확대에 대한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윤석희 전국공무원노조 경기도청지부장은 “LH 사태에 대해 공무원은 누구나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무원 전체를 부정부패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정보 접근자는 극히 소수다. (경기도청에)투기 의혹이 제기된 사람도 원래부터 공무원이던 사람이 아니다. 정부가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저런 대책을 내놓은 것 같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하는데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울산의 한 기초단체 노동조합 소속 7급 공무원은 “하위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민원 업무를 맡고 있는데 이들의 재산을 공개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며 “공무원들이 여론 잠재우기용 선거전에 이용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임기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장은 “정부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참 바쁜 모양”이라며 “하다하다 하위직 공무원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모느냐”고 꼬집었다.

제주의 9급 공무원 A씨는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 나오더라도 대부분의 일선 공무원들은 떳떳하다”며 “애초에 잘 관리하지도 못할 정책이라 인력·재정만 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성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원주시지부 사무국장은 “아무리 정부차원에서 급한 대책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라고 본다”며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의 낮은 계급의 공무원들이 말은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지역 한 기초지자체 담당급 직원 B씨는 “고위직과 하위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직무별 구분없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건 공무원 모두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실군 9급 공무원 C씨는 “어차피 대부분 신입 공무원들은 재산도 없고 이번 사태에 별 관심도 없다”면서도 “무슨 일만 터지면 공무원만 걸고 넘어지는 게 기분 상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김성용 대전시공무원노조위원장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재산등록 대상자가 최대 1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고, 그 가족들까지 더하면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와, 투입될 행정력이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가 된 LH 하나만을 대상으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면죄부를 받을 생각에 문제의 본질을 모든 공무원에게 떠넘기는 처사”라며 “이제 막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범죄의 우려가 있으니 재산등록을 해야 한다고 하면, 인권 침해로 비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전 자치구 9급 공무원 D씨도 “모든 공직자들이 신분상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낙인을 찍는 것과 다름 없다”며 “급한 불만 끄려고 하는 것이 아닌,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반면 일각에서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수긍의 의견도 나왔다.

전북도청 5급 공무원 E씨는 “행정력 낭비가 생기는데다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긴한다”면서도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공무원이 앞장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전북도청 5급 공무원 F씨는 “대다수 말단 공무원들은 이번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재산공개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모양새”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재산공개를 위해 서류 준비를 해야한다는 일련의 과정을 귀찮게 생각할 뿐 이 정책 자체에 대해 크게 문제를 삼는 모습은 아직까지 없다”고 전했다.

울산의 한 기초단체 9급 공무원 G씨는 “LH 사태로 애꿎은 공무원들만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떳떳하다면 공개를 못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선량한 공무원들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 브리핑을 통해 “원칙적으로 모든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겠다”며 사실상 9급 공무원까지의 재산등록을 의무화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국=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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