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SK “ITC결정 확정땐 美 떠날것”… LG “지재권 존중은 경영 기본”

김현수 기자 , 곽도영 기자 , 홍석호 기자

입력 2021-03-30 03:00 수정 2021-03-30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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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美공장 철수 검토’ 배수진
美 다녀온 김종훈 의장 본보 인터뷰 “ITC, 해명 기회도 안 주고 결론내
3조짜리 조지아 공장 놀리라는 것… 협박 아냐… 美도 우리 입장 돼보라”



“‘좋아서 나가는 게 아니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으로 쫓겨 나가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왔습니다.”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 정계 인사를 만나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제시한 합의금을 낸다면 10년 동안 미국 공장을 돌려 버는 돈을 모두 가져다주는 것이다. (미국) 공장을 닫고 나가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김 의장은 2주간 미국 출장을 마치고 28일 귀국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도 미국 출장길에 오른 상태다. 미국 대통령의 비토권 행사 시한인 4월 11일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 10일(현지 시간) ITC는 SK와 LG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주며 SK에 2∼4년간 유예기간 후 10년간 배터리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배터리 부품 소재를 미국에 들여와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조치다. 이 결정이 확정될지, 무효가 될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손에 달린 상황이다.

김 의장은 “ITC는 SK이노베이션에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방어할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증거를 인멸한 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며 LG 측의 (침해)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대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아 ITC의 결정이 시행된다면 10년 동안 부품도 못 가지고 오고, (조지아주의) 26억 달러(약 3조 원)짜리 공장을 그대로 놀리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는) 이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주를 설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공장 건설을 중단하고 철수 시나리오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1공장은 이미 샘플 생산에 들어간 상태이고 2공장은 건설 중이다.

미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일종의 압박 아니냐는 질문에 김 의장은 “협박이나 빈말이 아니다. 미국 측에 ‘우리 입장이 되어 보라’고 했다. 10년 동안 공장을 그대로 놀리면서 어떤 사업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철수 방법에 대해 경영 컨설팅을 받고 있다. 유럽 수요가 많으니 설비를 헝가리 공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우선 2공장 건설부터 멈출 것”이라고 전했다.

양사가 합의하면 대통령 비토권과 상관없이 ITC 결정은 무효화된다. 이달 초 SK와 LG 측이 한 차례 협상을 시도했지만 LG는 3조 원 이상, SK는 1조 원가량을 제시하며 양측의 간극만 확인한 상태다. LG 측이 제안한 금액이 너무 높아 차라리 철수하는 게 낫다는 게 김 의장의 설명이다.

김 의장은 “미국은 조지아 투자도 유지하고 싶고, 미국 사회가 중요시하는 지식재산권 보호도 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지식재산권 보호는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 다투면 된다”고도 강조했다. 앞서 LG 측은 영업비밀 침해로 SK이노베이션을 ITC에 제소하면서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도 소장을 제출해 현재 계류 중인 상태다.

그는 “미국 측에 ‘둘 다 두고, 경쟁하게 하라(Keep them both, let them compete)’고 전했다. ‘즉결처분’ 방식의 ITC와 달리 델라웨어 법원에선 시간은 걸리지만 충분히 영업침해 여부에 대해 제대로 다뤄질 수 있다. 이후 보상액을 판결하면 돈이 얼마가 나오든 그대로 따르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현수 kimhs@donga.com·곽도영 기자

LG에너지 “글로벌 규범 받아들여야”


“국제적 인정받는 ITC결정을 무시… 변론 기회, 양측에 충분히 있었다
제안한 보상안, 국제 기준에 근거”
현지 SK공장 인수 파트너십 의지도


SK이노베이션에 수입 금지 명령을 내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판결에 대한 대통령 비토권(거부권) 행사 시한을 보름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도 워싱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29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LG 측은 현지 법인 등을 통해 다음 달 11일로 예정된 대통령 비토권 행사 관련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2025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해 미국 내 자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도 미국 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방어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최근 10년간 600여 건의 ITC 소송 중 대통령 거부권은 단 한 번 행사됐고 ITC의 판결이 폭스바겐 2년, 포드 4년 등의 수입 금지 유예 기간을 두며 미국 완성차 제조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또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수입 금지에 대한 거부권일 뿐 ‘SK이노베이션이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ITC의 판단은 유효하기 때문에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서 승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LG 측은 ITC가 양측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도 ITC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이사회 의장인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은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ITC가 소송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판단은 물론이고 조직문화까지 언급하며 가해자에게 단호한 판결 이유를 제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 부회장은 “경쟁 회사의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존중은 기업 운영에 있어 기본을 준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경쟁사(SK이노베이션)는 국제무역 규범에 있어 존중 받는 ITC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원인을 글로벌 분쟁 경험 미숙으로 일어난 일로만 여기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한발 더 나아가 26일 ‘판결문에 적시된 영업비밀 리스트와 관련된 증거자료를 양사가 직접 확인해 볼 것’을 SK이노베이션에 공개적으로 제안했지만 현재까지 SK 측의 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제안은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주총에서 “ITC가 사건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는 판단하지 않은 채 경쟁사의 모호한 주장을 인용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한 일종의 반박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ITC에 변론 기회가 없었다는 SK 측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소송 과정에서 현지 로펌을 통해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연방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한 당사의 제안을 가해자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라며 수용 불가라고 언급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며 “현금, 로열티, 지분 등 주주와 투자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내 배터리 사업 철수를 검토한다는 데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사업 철수에 따른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 SK가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LG 측은 김종현 사장 명의로 래피얼 워녹 조지아주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 공장 인수에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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