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 수사에 2000명 투입…선거앞 다급한 정부 ‘총동원령’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3-29 16:38 수정 2021-03-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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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2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폭발하고 있는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26번째로 선보인 대책은 ‘공직자 투기 방지 종합 선물세트’였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쏟아낸 25번의 대책은 대체로 채찍(투기억제)와 당근(공급)을 적당히 조율한 모양을 갖췄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집약한 ‘채찍’ 완결판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돌아선 민심을 달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번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만큼 커진 상태에서 LH 직원 땅 투기 의혹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부동산을 둘러싼 현 정부 공직자와 여당의원들의 ‘내로남불’ 행태가 인내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한폭탄’으로 여겨진 공시가 폭등을 방임한 것도 분노를 키웠다.


● 26번째 대책은 ‘공직자 투기 방지 종합세트’
29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의 타깃은 공직자다. LH 직원 땅 투기 의혹 제기 이후 속속 드러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행태가 도를 넘어선 데다 이로 인한 여론의 반발이 10일 앞으로 다가선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최대 악재가 되고 있어서다. 1년 남짓 남은 현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하고, 내년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책은 부동산 투기가 이뤄지는 전 과정에 걸쳐 ‘예방-적발-처벌-환수’하는 내용을 고루 담고 있다. 특히 적발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 규모를 2배로 확대해 1500명 이상으로 편성하고,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 수사관을 투입하기로 했다. 부동산 투기사범 색출을 위해 수사 인력을 2000명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검찰의 직접 수사의 길도 열어 놨다. 이날 대책을 발표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검찰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직접 수사를 할 것”이라며 “부동산 부패 관련 송치 사건 및 검찰 자체 첩보로 수집된 6대 중대범죄는 직접 수사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또 “투기 비리 공직자는 전원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라며 “이들이 취득한 범죄수익은 몰수·추징 보전을 통해 전액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현재 4급 이상 공무원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재산 의무등록 조치를 모든 공직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부동산 취득 시 경위와 자금 출처를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하고, 업무 분야와 관련되는 부동산 취득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 행위자 등 부동산시장 4대 시장 교란 행위자에 대해선 부당이익이 있다면 3~5배를 벌금으로 부과해 환수하고,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기로 했다. 또 투기적인 목적으로 1년 미만 보유한 토지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양도세율을 현행 50%에서 70%로 높이기로 했다.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농지와 관련해서는 취득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토지 투기자에 대한 보상에도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토지보상가액은 엄격하게 산정하고, LH 등 부동산 업무 관련 종사자는 대토보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 단기 투기 방지를 위해 장기 보유자에게 협의양도인 택지를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경우에는 즉시 처분하도록 명령하고, 이를 어길 시엔 △취득자에 대해선 5년 또는 해당 토지가액에 이하 벌금 △중개업자에 대해선 3년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임대업자에 대해서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 정책 실패로 쌓인 불만을 투기단속으로 막나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이번 대책이 현 정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민심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무엇보다 25번에 걸쳐 쏟아낸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신뢰 저하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부동산 정책은 채찍(투기억제)을 앞세운 당근(공공 중심의 주택공급 확대)으로 요약된다. 이 과정에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곁들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8·2 부동산 대책’을 언급하며 “역대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다.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선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두 달 뒤인 2020년 1월 신년사에선 “지금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같은 해 8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선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집값 상승세는 꺾이질 않았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KB부동산 리브온의 주택가격동향을 분석한 결과 2017년 5월 서울 평균 아파트값은 3.3㎡당 2326만 원에서 지난달 4194만 원으로 1868만 원 올랐다. 상승률은 무려 80.3%에 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2배 이상 오른 곳도 속출했다.

현 정부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시민단체에서도 실패했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75개 아파트 단지 11만 7000채를 대상으로 부동산 대책과 집값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올해 발표된 ‘2·4 대책’을 제외하고 조사 기간인 44개월 동안 24번의 부동산 대책에 부동산 시세가 보합을 보인 경우는 4,5개월에 불과했고, 거의 대부분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올랐다.

상황이 이쯤 되자 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입니다”며 처음으로 부동산 문제에 사과하는 발언을 내놨다.

여기에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폭발 직전에 이른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민심에 불붙은 데 기름 부은 꼴이 됐다. 25번의 대책을 통해 내 집 마련 실수요자나 1주택자들의 적잖은 고통을 강요하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2020년 1월 대통령 신년사)”던 정부가 내부 단속도 제대로 못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LH 직원 행태에 대한 옹호성 발언과 LH 직원들의 “꼬우면 (LH로) 이직하던가” 등과 같은 글들은 정부에 대한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현 정부 공직자들의 ‘내로남불’ 행태가 부동산에서도 펼쳐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악재다. 특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 3법’의 시행 직전에 본인 소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14% 넘게 올려 계약한 사실은 분노를 넘어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왔다.

시한폭탄으로 여겨졌던 공시가격 급등을 밀어붙인 정부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충분히 사전에 조율이 가능한데도 이를 방치하면서 불만을 키웠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현재 추락하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는 그동안 계속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여론의 반응 결과”라며 “그런데도 일부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를 문제 삼아 ‘친일반민족행위’에 준한 처벌을 논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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