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뺑소니-무면허 운전자 사고내면 보험 처리 못 받는다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3-28 17:44 수정 2021-03-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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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9일 새벽 1시경, A 씨(34)는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벤츠 차량을 몰다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보험사가 유족에게 지급한 보험금은 2억7000만 원이지만 A 씨가 낸 비용은 고작 300만 원이었다.

같은 시기,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대마초를 피운 뒤 환각 상태로 포르셰 차량을 운전한 B 씨(45)는 7중 추돌 사고를 내고도 사고 처리 비용으로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피해자 9명에게 지급된 보험금 8억1000만 원은 모두 보험사에서 부담했다.

이는 음주운전이나 무면허 운전이라도 보험 가입자가 대인 1000만 원, 대물 500만 원 한도의 사고부담금만 내면 보험사가 나머지를 보장해주는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음주운전이나 무면허, 뺑소니는 물론 마약을 복용하고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험금 전액을 보험 가입자가 물어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28일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어도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올해 정부 합동으로 마련한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의 후속 조치로 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대폭 강화했다. 개정안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7~12월)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는 먼저 음주운전, 무면허, 뺑소니 사고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전액을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이런 중대 위반 행위로 사고를 냈더라도 ‘사고부담금’만 내면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 음주운전의 경우 사고부담금(의무보험 기준)은 대인 최고 1000만 원, 대물 최고 500만 원이다.

정부는 원래 대인 300만 원, 대물 100만 원이던 부담금 한도를 지난해 9월 ‘인천 을왕리 음주운전’ 사고를 계기로 현재의 기준으로 높였다. 하지만 피해 규모와 죄질에 비해 가해자 부담이 여전히 적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아예 한도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사고부담금이 적용되는 중대 위반 행위에 ‘마약·약물 운전’이 추가된다. 마약이나 향정신성 약물로 인한 환각 상태가 만취 운전만큼 위험하다는 점이 지난해 9월 ‘부산 해운대구 환각 사고’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울러 12대 중과실로 사고를 낸 가해 차량 운전자는 앞으로 자신의 차량 수리비를 피해자에게 청구할 수 없게 된다. 교통사고 인명 피해는 가해자가 전액 배상한다. 하지만 차량 수리비와 같은 물적 피해는 과실 비율에 따라 분담한다. 이렇다보니 가해 차량이 비싼 외제차라면 오히려 과실이 적은 피해자가 더 많은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가해자는 앞으로 과실 비율에 따른 피해 차량의 수리비 일부와 자신의 차량 수리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12대 중과실은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앞지르지 위반, 건널목 위반, 횡단보도 위반, 무면허, 음주, 보도침범, 승객추락방지의무 위반, 스쿨존 위반, 화물고정 위반 등이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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