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과정 녹음해야” 상품 가입시간 평소 2~3배 걸리기도

김형민 기자 , 이상환 기자

입력 2021-03-26 03:00 수정 2021-03-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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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법 첫날 은행들 진땀




“고객님, 전체 상담 과정을 녹음해야 합니다.”

25일 서울 종로구 A은행에서 기자가 금융상품 가입 설명을 요청하자 직원은 이날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라 판매 과정을 녹음해야 한다고 했다. 직원은 상품설명서를 읽어주고 이를 이해했는지 여러 번 되물었다. 기자의 성향 분석 결과 ‘안정형 투자’ 성향이 나왔다. 이번에는 “고위험 상품을 가입하고 싶다”고 하자 직원은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렸다. 그는 결국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내일 다시 와서 투자성향서를 작성하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날 상담은 1시간이 걸렸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사 판매 책임을 강화한 금소법이 시행된 첫날 금융회사 영업점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법에 따르면 은행 직원들은 소비자의 성향을 조사한 뒤 그에 맞게 상품을 권해야 하지만 여전히 투자 성향을 당사자가 아닌 직원이 바꾸는 잘못된 영업 관행이 발견됐다.

“고객님의 투자 성향은 제가 ‘위험 성향’으로 분류해 드릴게요. 이렇게 해야 고수익 상품에 가입하실 수 있어요.”

B은행에서 만난 한 직원은 ‘고수익 상품에 가입하길 원한다’는 기자의 요청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기자의 휴대전화를 직접 가져가 투자 성향도 입력해줬다. 결과는 ‘고위험·공격형 성향’으로 나왔다. 이렇게 해서 고수익·고위험 상품 가입도 가능해졌다. 이날부터 시행된 금소법에 따라 은행원들은 소비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상품을 권할 수 있다.

법에 명시되지도 않은 판매 과정 전체 녹취 탓에 가입시간이 평소의 2∼3배가 걸린 곳도 있었다. 은행 관계자는 “금소법이 시행됐지만 은행 및 지점마다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제각각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금소법 위반 소지가 있는 서비스는 아예 중단하고 있었다.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스마트 텔러 머신(STM)’ 서비스를 중단했다. 금소법에 따라 금융상품을 팔 때 약관, 상품설명서, 계약서를 가입자에게 e메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비슷한 이유로 무인 방식의 상품 판매 서비스를 중단했다. NH농협은행도 여러 펀드가 묶인 포트폴리오 상품의 비대면 판매를 중단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금소법에 대응하기 위해 전산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회사들은 금소법 시행령과 감독 규정이 너무 급하게 만들어져 이에 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 관련 법 시행 이후 이렇게 논란이 된 적이 없었다”며 “그만큼 강력한 법이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감독 규정이 늦게 나온 것은 인정하면서도 “금융회사가 과잉 대응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법 시행 전까지 최근 1년 동안 금융회사와 꾸준하게 법과 관련해 논의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앞으로 6개월간 고의·중대 과실을 제외하고는 유예 기간을 부여하며 금소법 안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이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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