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M&A- 신사업 공격 행보… 재계 “뒤늦은 따라하기” 우려도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3-25 03:00 수정 2021-03-25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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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시장 재편속 인수합병
중고나라 이어 이베이코리아 관심… 회사측 “작년부터 반격 준비”
부진했던 사업부 임원 절반 경질… 롯데쇼핑 사내이사에 非공채 발탁


올해 1월 13일 열린 ‘2021년 상반기 롯데VCM’(가치창출회의)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우리의 잠재력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후 롯데는 과감한 조직 정비와 인수합병을 연이어 추진 중이다. 롯데 제공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을 계기로 이커머스 시장이 재편되는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롯데그룹 사상 처음으로 바이오 사업 진출도 꾀하고 있다.

경제계 전문가들은 신 회장이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본다. 신 회장이 생존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남들이 하는 사업을 뒤늦게 따라하는 수준의 조직문화로는 시장을 주도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재계에서 나온다.

○ 성장동력 찾는 신동빈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이사는 23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롯데그룹의 예비입찰 참여는 업계 동향 파악을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강 대표가 인수 의지를 공식화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롯데 측은 최근 재무적투자자(FI)와 함께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인수 계약을 체결했고 엔지켐생명과학에 대한 지분 투자를 통해 바이오 사업 진출도 검토 중이다.

이를 두고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이후로 멈춰 있었던 신 회장의 ‘M&A 승부사’ 기질이 깨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 회장은 2004년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수장을 맡은 뒤부터 2004년 롯데홈쇼핑, 2007년 롯데손해보험, 2008년 롯데칠성음료 주류부문, 2010년 코리아세븐 등 굵직한 M&A를 주도하며 그룹의 외형을 키웠다. 2011년 회장 취임 이후에도 2012년 롯데하이마트에 이어 2015년 롯데렌탈, 뉴욕팰리스호텔을 인수했다.

하지만 롯데는 ‘형제의 난’ 이후 대형 악재가 지속됐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제공으로 인한 중국 매출 감소, 2018년 신 회장의 구속에 이어 2019년 반일(反日) 불매운동이 일었고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리테일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그룹 매출은 사업 부진으로 인해 2019년 74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60조 원대로 떨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가 계속되며 지금까지는 수성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는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되자 신 회장의 기질이 다시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8월 인사에서 M&A 전문가인 이훈기 부사장을 그룹의 혁신 계획을 짜는 신설 조직인 롯데지주 경영혁신실장에 선임했을 때부터 예상됐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유통과 화학을 비롯한 주력사업 실적이 급락하면서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등 내부 사안 해결보다 사업 혁신이 급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며 “그때부터 반격을 준비해온 것”이라고 했다.

○ 수시 인사로 ‘언제든 책임 물을 것’ 메시지



지난달 조영제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장이 사임할 때 상무급 임원 2명이 함께 사임했다. 그룹 정기 임원 인사 3개월 만에 이커머스사업부 상무급 이상 임원 5명 중 절반 이상이 경질된 것이다. 이를 두고 그룹 내부에선 “지난해 8월 인사만큼 충격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롯데그룹 이커머스사업부 거래액은 2019년 7조1000억 원에서 2020년 7조6000억 원으로 7% 성장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쿠팡 네이버가 거래액을 30% 이상 키운 것에 비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리다가 이커머스 부문에서 또 한 번 실기(失期)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언제든지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주주총회에서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장(전무)을 사내이사로 선임한 것도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 전무는 한국까르푸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2009년 롯데쇼핑에 합류했고 지난해 11월 마트사업부장으로 선임됐다. 롯데쇼핑 사내이사에 마트사업부장이 합류한 건 처음이다. 그룹 공채가 아닌 외부 출신이 핵심 계열사 사내이사가 된 것도 이례적이다. 롯데는 아직 공석인 이커머스사업부장에 대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의 ‘순혈주의’가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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