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내집마련 지역, 더 큰 ‘공시가 폭탄’ 맞는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3-17 13:12 수정 2021-03-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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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공동주택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공시가격이 부실 산정됐을 가능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제대로 된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정황도 드러나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조사원들에게 과다한 물량이 배정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가 공시가격 동결과 전면 재조사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하는 등 조직적인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 ‘공시가 폭탄’이라는 반응 속에 의혹들이 사실로 들어날 경우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편 지난해 서울에서 생애 최초로 부동산을 구입했던 20~40대가 선호한 대부분의 지역의 공시지가가 2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끌’을 통해 겨우 내 집 마련에 성공했는데 ‘공시가 폭탄’을 맞게 됐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 들쑥날쑥한 공시가격


공시가격 부실 산정 논란은 같은 동, 같은 단지 아파트인데도 공시가 상승률이 차이 나거나 실제 시세가 싼데도 공시가는 높게 책정되는 곳들이 속출하면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D아파트 14층에 위치한 114㎡(전용면적 기준)는 마주보고 있는 2채의 공시가격이 서로 달랐다. 이 아파트의 거래가는 동일하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M아파트는 같은 층인데도 크기에 따라 상승률에 차이가 있었다. 114㎡는 18.4%, 59㎡는 16.1%, 84㎡는 12.4%로 각각 책정된 것이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수사거리에 나란히 위치한 R아파트와 E아파트 59㎡는 실세 시세 흐름과는 다르게 공시가격이 산정된 사례다. R의 시세(14억 6000만 원)가 E(15억 2500만 원)보다 낮았지만 공시가는 R이 10억 1500만 원으로 E(9억 4300만 원)보다 높았다.

이밖에 같은 단지, 동일 면적 아파트인데 공시가격 상승률에 큰 차이를 보이거나 심지어 지난해와 올해 공시가격이 역전되는 곳도 나왔다.


● 커지는 공시가 논란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가격 책정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주택 공시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의 가격 산정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는 제주도의 발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제주도는 16일 공시가격에 대한 현장 검증 결과 47건의 오류를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책정된 공시가격이 책정된 주택이 1134채에 달했다고 밝혔다. 또 이런 공시가격 왜곡으로 1234명의 납세자가 재산세를 부당하게 더 냈거나 덜 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제주도에서는 제주의 표준 단독주택 4451채의 가격을 산정하는 조사원이 한국부동산원 제주지사 직원 7명에 그치는 점에 주목했다. 1인당 635채를 해야 하는 셈인데, 소수의 직원이 다수의 주택을 보기 때문에 일일이 현장조사를 다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국토부가 지난해 공개한 ‘2020년도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조사에 투입된 인원(520명) 한 사람 당 맡은 공동주택은 845동, 2만 6596채에 달한다. 공동주택은 단독주택과 달리 한국부동산원에서 직접 전수조사를 통해 가격을 정한다. 훨씬 업무부담이 큰 셈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는 정부에 주택 공시가격 동결과 전면 재조사를 건의할 방침이라고 17일 밝혔다. 원 지사는 이미 공시가격 결정 기준이 되는 ‘표준주택’ 가격 책정에 오류가 있다며 전국적으로 재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15일 촉구했다. 여기에 조 구청장이 동의한 것이다.


● ‘영끌’ 20~40대에 공시가 직격탄

전국적으로 공시가 급등에 따른 세금 및 각종 부담금 등의 급등한 가운데 특히 지난해 서울에서 생애 최초로 부동산을 매입한 40대 이하 수요자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선호한 지역이 모두 공시가격이 20%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생애 첫 부동산 구입자는 모두 9만 7416명. 이는 전년(6만 5516명)보다 49%가량 급증한 것이며, 지난해 서울에서 부동산을 구입한 전체 인원(33만 8488명)의 28.8%에 해당한다.

생애 첫 부동산 구입자 가운데 90% 이상은 아파트를 포함한 집합건물을 사들였다. 집합건물 매수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30~39세가 47%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고 △40~49세 20.3% △19~29세 14.6% △50~59세 10.9% △60세 이상 6.8% △18세 이하 0.3%였다.

연령대별로 집합건물 선호지역은 달랐다. 전체적으로는 강동(공시가격 상승률·27.25%)-강서(18.11%)-은평(17.85%)의 순이었다. 하지만 30~39세는 관악(21.38%)-중랑(22.06%)-구로(22.48%) 순으로 선호했다. 40대는 강동(27.25%)-중랑(22.06%)-관악(21.38%), 19~29세는 노원(34.66%)-서대문(22.59%)-동작(21.17%)이 각각 1~3위를 차지했다.

‘영끌’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40대 이하 수요자들이 선호한 지역들은 모두 공시가격 상승률이 서울 평균(19.91%)을 웃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공시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노원구의 한 주민은 “지방보다도 가격이 싼 집이 노원구에 허다하고, 강남과 다른 지역이 미친 듯 집값 오를 때 노원구는 체면치레로 조금 올랐는데, 공시가격은 제일 많이 올랐다. 노원구는 이래저래도 민주당 표밭이니 이리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밝혔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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