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이 아닌 경력 ‘보유’[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입력 2021-03-17 03:00:00 수정 2021-03-17 14: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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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10년 넘게 일하던 대기업에서 육아를 위해 사표를 냈을 때 전혜영 더블유플랜트 공동 대표는 자신의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알아주던 대기업을 나오고 나니 자신에게 남은 것은 글로벌 브랜딩 프로젝트를 하면서 쓰던 영어 실력과 컴퓨터 사용 능력밖에 없다고 느꼈다.

퇴사를 하고 5년째 되었을 때,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구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 ‘엄마를 위한 캠퍼스’ 참여를 추천했다. 전 대표의 첫 반응은 “생각해본 적 없어요”였다. “이제 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란 의심도 많았지만 결국 참여하여 창업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 그 후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한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힘을 얻게 된 계기는 소셜 벤처 ‘진저티 프로젝트’에 합류해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란 책의 기획을 맡게 된 것이었다. 20대 여성 6명이 비슷한 고민을 조금 일찍 경험한 20, 30대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해 여성과 일에 대한 주제로 세 권의 책을 냈다. 나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난 제목이 많은 직장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성공사례를 롤모델 삼아 쫓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롤모델은 흔히 자신과 수직적인 관계로 놓고 생각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보다는 주변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레퍼런스’(참고) 삼아 듣다 보면 자신을 발견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연대감도 생기게 마련이다. 전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에서 수직적으로 일하던 방식이 아닌, 젊은 세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롭게 배웠다. 무엇보다 일터로의 복귀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레퍼런스를 주제로 책을 기획했던 그는 관련 분야 사업을 기획하게 된다. ‘더블유플랜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여성과 일을 주제로 기업 교육을 기획, 운영하고 유료 커뮤니티 멤버십 프로그램인 ‘창고살롱’을 운영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사회 초년생부터 워킹맘이나 육아휴직 중인 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삶과 고민을 나누며 자기에게 있는 힘을 발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레퍼런스가 되는 독특한 모임을 동료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첫째, 자신도 퇴직과 함께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워킹맘은 물론이고 누구나 자기 안에 경험과 역량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따라서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스스로를 ‘경력 단절’이란 시각보다는 ‘경력 보유’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둘째는 연결의 중요성이다. 전 대표 역시 사회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돕는 ‘루트임팩트’에서 경력 보유 여성을 위한 ‘임팩트 커리어 더블유’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도움을 받았다. “혼자 고민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주변에 알리고 연결될 때 새로운 관계와 기회도 얻을 수 있어요.” 그가 ‘창고살롱’을 운영하는 이유도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서로 나눌 때, 보이지 않던 자기 안의 힘과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한 경험도 귀하고 고유한 자산이 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지내다가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 누구나 실패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때가 중요하다.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서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성장의 과정이리라”라는 생각으로 계속 시도해야 한다.

전 대표는 이제 스스로를 디스커버링-커넥터(Discovering-Connector), 즉 여성의 가능성과 능력 발견을 돕고, 서로 연결하여 기회를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는 더 이상 ‘커리어가 끝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단계의 커리어를 신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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