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 외길 인생” 탁구 명장에서 골프장 경영 변신 이유성 사장[김종석의 TNT타임]

김종석 기자

입력 2021-03-16 11:45:00 수정 2021-03-16 12: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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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제주 우리들CC 사장으로 새 도전
대한항공 탁구 코치에서 전무까지 39년 한 직장
30년 전 지바 세계탁구 남북 단일팀 우승 주역


탁구 지도자와 행정가로 활약하다가 골프장 경영에 뛰어든 이유성 제주 우리들CC 대표. 우리들CC 제공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가벼운 2.7g의 작은 공을 갖고 하는 탁구에서 그는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음달이면 30주년을 맞는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북 단일팀 여자 코치로 우승을 이끈 건 지도자 인생의 최고 황금기였다. 당시 경상도가 고향인 현정화와 홍차옥, 함경도 태생인 리분희와 유순복이 힘을 합친 단일팀은 세계 최강인 ‘만리장성’ 중국을 허물고 여자 단체전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2005년부터 15년 동안 대한항공 스포츠단장으로 장수하며 체육행정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가로×세로 152.5×274㎝ 크기의 탁구장을 호령하던 그가 108만㎡(약 32만 평) 규모의 광활한 골프장을 무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유성 제주 우리들컨트리클럽 사장(64)이다.




● 골프장이 밝아져야 고객들도 만족
올해부터 새롭게 골프장을 이끌고 있는 그는 1982년 3월 대한항공 탁구단 코치를 시작으로 전무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그래도 낯선 무대를 앞두고는 망설임이 컸다고 한다. 이유성 사장은 “예전에 농담 삼아 골프장 사장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지난해 8월 주위의 만류에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며 39년 동안 몸담았던 대한항공에 홀연히 사표를 제출한 그는 지인의 권유로 우리들CC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사양했다. 탁구 밖에 모르는데 골프장과는 맞지 않는다고 봤다. 두세 번 권유를 받으면서 결국 응하게 됐다.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들CC가 탁구팀으로 치면 하위권인데 1,2년 안에 중상위권으로 올리는 감독 역할을 하려면 코치로 골프 전문가가 필요하니 영입해 달라.” 지난해 12월 한 달 가까이 ‘코칭스태프’ 구성에 공을 들인 이 사장은 제주 오라CC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조장현 전 오라관광 전무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2008년 9월 개장한 우리들CC는 18홀 퍼블릭 코스로 25실 규모의 골프텔도 갖추고 있다.

이유성 사장은 부임 초기 직원 사기 진작에 공을 들였다. “조직 문화가 밝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신경을 썼다. 일선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업종인 만큼 직원들의 표정부터 밝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사장은 스포츠 용품업체 휠라와 협력을 통해 직원 파커와 캐디 유니폼을 새롭게 지급하는 등 복리후생 개선에도 집중했다. 이 사장은 “1,2월 매출이 전년도 대비 80%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영향이 있다고는 해도 긍정적인 시그널인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 탁구 지도자 경험도 골프장 경영에 접목시키고 있다. “여름에는 무더위 탓에 골프장 내장객이 줄어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탁구 얘기를 꺼냈다. 한국 탁구가 세계 최강 중국을 이기기 위해선 두려움부터 없애야 했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름을 성수기로 만들자고 했다. 여행업계 종사자들부터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최상의 코스 상태 유지에도 공을 들이는 이 사장은 골프장 개장 후 처음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 유치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 탁구나 골프나 멘털과 쇼트게임이 중요
탁구 지도자와 행정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유성 제주 우리들컨트리클럽 사장. 월간탁구 제공

20년 골프 구력에 베스트 스코어 77타인 그의 골프 핸디캡은 10~12라고 한다. 이 사장은 탁구와 골프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탁구와 골프는 대표적인 멘털 스포츠이다. 탁구는 흔히 기술, 파워, 순발력을 다투는 것 같지만 선수 심리를 잘 컨트롤해야 이길 수 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최고 시속 150㎞로 날아오는 공을 손바닥 보다 조금 라켓으로 순식간에 받아 넘기려면 상대 구질과 회전 속도까지 판단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 자신감을 잃거나 욕심으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면 점수를 잃게 된다. 골프 역시 어깨에 힘을 빼야 굿샷이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이 사장은 “아무리 거리가 나도 쇼트게임 못하면. 스코어가 제대로 나올 수 없다. 탁구도 네트 플레이를 잘해야 한다. 작은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탁구와 골프는 작은 공을 다뤄야 하므로 둘 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체를 고정하고 다리-복근-어깨로 연결되는 탁구 스윙은 골프와 흡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탁구 선수 가운데 골프 고수가 많다.

● 아직도 생생한 30년 전 단일팀 우승 기억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여자 단체전 정상에 올랐다. 시상대에 나란히 선 남북의 이유성 조남풍코치 홍차옥 유순복 현정화 리분희(왼쪽부터) 동아일보 DB

중학교 시절 탁구와 인연을 맺은 이 사장은 배재고에 진학했으나 탁구부가 해체 돼 탁구 명문인 신진공고를 거쳐 1976년 한국기계에서 실업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로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은퇴 후 특유의 카리스마와 끈끈한 친화력으로 지도자로 빛을 발했다.

이 사장에게는 30년이 흐른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남북 단일팀 우승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과 엊그제 일 같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대회 9연패를 노리는 중국을 꺾은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 사장은 “남과 북이 한 팀이 됐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의견 충돌도 심했다. 하지만 합동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벽을 허물었고 어느새 눈빛만 봐도 통할 수 있게 됐다. 이래서 피가 물보다 진한가 보다 했다.” 특히 여자 단일팀은 남과 북의 감독이 코칭스태프를 이뤄 훈련과 선수기용 문제 등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찰을 빚을 때가 많았다. 조정자 역할을 했던 게 당시 코치였던 이 사장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 사장은 남과 북의 다른 탁구 용어를 맞추는 데도 신경을 썼다. 말이 통하지 않고 서는 최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 “커트는 깎아치기로, 서브는 쳐넣기로 북측 용어를 최대한 수용하려고 했다. 선수들은 파이팅 대신 이기자, 만회하자로 말하기도 했다.” 탁구 남북 단일팀 세계 제패는 국내에서 하지원 주연의 영화 ‘코리아’로도 제작돼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최근 남북 체육 교류는 사실상 문이 닫힌 상태다. 30년 전 탁구 남북 단일팀 시절보다도 퇴보한 느낌마저 준다. 이유성 사장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 사장은 “1990년 전후로 남북 탁구는 국제무대에서 자주 맞대결을 펼쳤다. 서로 잘 알다보니 불가능하게 보였던 단일팀 구성도 일사천리였다. 일단 평소에 자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뭐든 이룰 수 있다.”


● 선수들에게 모든 정성을 기울여야 조직도 발전
이유성 우리들CC 사장이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 일하던 당시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현정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유성 사장은 1993~1995년, 2002~2004년 여자탁구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4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2002 부산 아시아경기 등에 출전했다. 2008년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자 10년 동안 부회장으로 협회 실무를 주도했다.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으로 경기 용인시에 배구전용 체육관과 숙소를 지어 안정된 훈련 여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학 체육관을 빌려 사용하는 열악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같은 투자에 힘입어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의 눈부신 성적으로 거두며 프로배구 남자부 강자로 떠올랐다.

이유성 사장은 “탁구 지도자 시절 선수들에게 모든 정성을 기울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철학을 가졌다. 늘 나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했고,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주위에 좋은 분들이 많았던 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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